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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텐을 터트리는 존재

나에게 관심과 인정과 사랑을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하지만 살면서 그런 관심과 인정과 사랑을 원하는 만큼 충분히 받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더욱 관심과 인정과 사랑을 받는 희소한 경험에 가치를 높게 매긴다. 그런 희소한 경험은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직장 상사에게 받을 수도 있지만 연인에게서도 받을 수 있다. 연인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인정해주고, 사랑을 듬뿍 주는 게 당연한관계다. 만약 당신의 연인이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심드렁하다면, 당신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를 읽어봐야 한다.




그녀는 책을 좋아한다. 그녀는 직접 고른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을 좋아한다. 책을 사서 밑줄을 그으면서 메모를 하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휘발될 때 쯤, 이미 읽은 책을 또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전에 그녀가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메모를 통해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갈피도 좋아한다. 그녀는 책을 병렬적으로 읽기 때문에 책갈피가 많이 필요하다. 그녀는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삶을 간접체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해리포터 시리즈와 만화책 슬램덩크를 좋아한다. 그녀는 알랭 드 보통과 프레드릭 배크만을 좋아한다.

그녀는 활자를 좋아한다. 책의 냄새와 촉감을 좋아한다. 과학, 예술,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양서를 읽으면서 상식을 넓히는 느낌을 좋아한다. 도전골든벨에 나올만한 내용이 나오면 연필로 동그라미를 친다. 그녀는 휴일에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가방에 미니북을 갖고 다닌다. 그녀는 인터넷서점 회원등급이 높다. 그리고 그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책 없는 호감을 느낀다. 그녀는 책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주변에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녀는 고민이 있을 때, 인생 책들을 꺼내서 읽는다. 그리고 그 책들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가 그녀와 사귀고 바로 다음날, 가장 인상깊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의 인생 책 3권이 뭐야?' 그는 인생 책이 당연히 3권은 있겠지 라고 생각한 그 전제에 놀랐다. 그는 나름대로 남자치고(?) 책 즐겨 읽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3권을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만만치 않다. '그 책들이 인생책인 이유가 뭐야?' 그는 자신이 그 책들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고, 그게 어떻게 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했다. 그는 그런 질문을 하는 그녀가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책사랑이 진심임을 이때부터 이미 알게 되었다.


그의 생일 날, 그는 그녀에게 책갈피를 선물했다. 그녀의 생일이 아니라 그의 생일이지만 그는 선물을 주고 싶어서 준비했다. 직접 종이에 장미꽃을 그려서 색칠하고 오린 뒤 코팅까지 해서 만든 수제 책갈피다. 그녀는 책갈피를 받고 웃어 제낀다. 최고의 선물이라며 기뻐한다. 100일 뒤 그녀의 생일날, 그는 책을 선물한다. 그녀가 읽고 싶어했던 책 여러권을 한꺼번에 선물했다. 그는 그녀의 책사랑을 응원한다. 그는 그녀와 데이트를 할 때 가방에 책을 챙겨간다. 카페에서 그녀가 책을 읽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란히 마주보고 한두시간 동안 각자 가져온 책을 읽는 데이트가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데이트를 좋아하는 그녀가 무지 근사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관심과 인정이 낯설었다. 그녀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선 다들 그러려니 한다. 그저 취미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도 그랬다. 그녀가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 얘기하면 눈동자가 흐려지면서 따분해했다. 그래서 그녀는 책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녀 혼자서만 즐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녀가 책을 즐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지고 훌륭한지 말해준다. 그녀 덕분에 그도 책을 더 즐기게 되었다고, 변한 그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보다 발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대견하다고 말해준다. 그는 카페에서 함께 자주 책을 읽자고 말했다. 그는 그가 읽은 책 내용에 대해서 그녀에게 말해준다. 그녀는 그 관심과 인정과 사랑이 뭉클했다.





그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는 달리기를 하면서 펄떡펄떡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심장이 온몸으로 피를 뿜어낼 때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는 땀을 양껏 배출하고 샤워한 뒤 마시는 맥주를 꼴딱꼴딱 넘기는 순간이 황홀하다고 여긴다. 그는 옷도 스포츠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그의 옷장은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가득 채우고 있다. 그는 매일 5km는 기본으로 뛴다. 달리기 호흡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는다.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상쾌하고 좋다. 발을 땅에 딛는 순간 발목의 탄성을 느끼는 게 좋다. 그는 나이키런 어플에 기록을 갱신하는 것을 즐긴다.


그는 단거리 달리기보다 장거리에 강하다. 그는 마라톤을 즐긴다. 친구들과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단체신청하고 뛴다. 가을에는 단풍을 보며 춘천 마라톤을, 봄에는 벚꽃을 보며 여의도 마라톤을 뛴다. 3/4구간을 넘으면 고통도 무감각해지면서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는데, 한계에 도전하는 그 뜀걸음을 좋아한다. 그는 러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책없는 호감을 느낀다. 혼자 뛰는 것보다 함께 뛰는 것이 더 좋기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반가워하며 함께 뛰자고 제안한다. 함께 뛰어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른 그의 달리기 속도에 놀라곤 했다. 그는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공원을 간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을 깊게 하고, 결론이 지어지면 힘차게 내달리며 의지를 다진다.


그가 그녀와 사귀고나서 그의 취미가 달리기라고 하자, 그녀의 반응은 반가움이었다. 그녀는 속도는 느리지만, 여자치고(?)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공원에서 같이 뛰자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 중에 달리기 한 직후가 제일 예쁘다며 마음 단단히 먹고 오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그는 달리기한 직후 그녀의 모습을 궁금해하며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세트를 입고 나갔다. 그녀는 뉴발란스 트레이닝복 세트로 입고 나왔다. 그녀는 달리기를 좋아할 뿐, 잘하지는 않는다. 호흡도 들쭉날쭉이고 보폭도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열심히 뛰었다. 목표로 한 거리를 다 채웠을 때, 그녀의 머리는 바람에 날려 산발이 되고 볼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본 모습 중에 가장 망가졌지만 가장 예쁜 모습이었다.


그녀는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뛸 수 있는 그의 심폐지구력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녀가 힘들어하자 어떻게 뛰어야 더 수월하게 뛰는지 스텝이나 호흡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것도 자상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칭찬에 그는 늘 멋진 남자가 된 듯한 기분을 듬뿍 느낀다. 그가 충분히 멋진 남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녀가 그를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녀와 사귀면 자존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의 생일날, 그녀는 아디다스 아노락을 선물했다. 그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행복해했다. 그는 행복이 세포로 퍼지면 웃을 때 보조개가 깊게 패인다. 그녀는 그의 보조개의 깊이를 보면서 그의 마음을 읽는다. 그는 그녀가 선물해준 마음에 쏙 드는 옷을 교복처럼 늘 입고 다녔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겨주고 먼저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그녀가 고맙고 예뻤고 사랑스러웠다. 데이트로 달리기를 하자고 하면 땀나서 싫다고 화장 지워진다고 거절할 법도 한데, 그녀는 그런 법이 없었다. 쌩얼에다 머리를 질끈 묶고 나타났다. 흰 운동화에 뉴발란스 트레이닝복 세트를 입고 준비운동을 그보다 더 열심히 한다. 그는 그녀의 속도에 맞춰서 조금 천천히 뛰면서 함께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의 성취를 인정해주고, 그에게 사랑을 냅다 퍼부어주었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이 뭉클했다. 그는 그녀에게 응원을 받는 것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곧 중독되어 버린다.





사랑은 나를 더 멋진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지게 만드는 무엇이다. 사랑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무엇이다. 사랑을 한다면 더 성장할 수 있다. 사랑은 사람의 포텐을 터트리도록 만든다. 나의 장점을 장점으로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의 잠재성에 감동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그 사람 덕분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더 노력하고 싶어진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근사한 사람이고 싶어진다. 사랑은 동기부여에 효과가 뛰어나다.


그와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당신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와 그녀는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뻔한 취미 또는 무난한 관심사 정도겠지만,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존경스러운 일이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상대방의 보석 같은 면을 찾아낼 수 있게 한다. 그들이 서로의 좋아하는, 잘하는 어떤 것에 관심을 주고, 인정을 해주는 동안에 마음 속에 무언가가 싹이 텄다. 그 싹은 잠재력이다. 사랑과 재능과 성실과 개성의 잠재력이다. 연인은 포텐을 터트리는 존재다. 자기 안의 잠재력을 터트려서 보다 멋지고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든다.


누구나 인정욕구는 있지만, 원하는 만큼 충분히 충족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를 알아봐주는 연인이 있다면, 나의 특별함을 찾아내 사랑을 퍼부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훨씬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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