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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Dec 28. 2023

인어공주가 되어버린 마리

단편 2. 쌤이 키다리아저씨셨군요.



마리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을 떼려 하니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숨을 들이시며 첫음을 내뱉는다.


오~~~~델   미오아 마토벤~




반주자와는 눈으로, 스스로는 발로 따닥따닥 박자를 맞추며 한 곡을 마치고 나니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압박감이 서서히 사라지며 자신감이 붙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두 번째 곡을 부를 때는 목청을 더더더!! 복식호흡을 하며 두음을 소화를 해냈다.

전교생의 격려의 박수를 받으며 마리는 순서를 끝냈고 다음은 플루트를 하는 정아가 무대 뒤에 서있는 것을 보고 눈빛으로 응원을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입이 바싹 탔다.

마리는 해냈다. 그런데 왠지 선생님이 이럴 때 계셨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과 원망이 남아있었다.

마지막 평가를 받고 싶었다. 성악 공부를 시작하고 큰 무대에 서본건 이번이 처음인데 지난 일주일간 선생님의 부재가 심적으로 무겁게 짓눌렀다. 마리가 의지했던 선생님이었기에 더 그랬다.


그 무대를 끝으로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이제 실기시험이 1주 후면 있고 그전까지는 학교에 나와서 음악실에서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날 밤 마리는 열이 나며 아프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려서 몸살이 난 듯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일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 하는데 '

마리는 감기약을 먹고 내일은 병원에 가야지 하며 잠을 청했는데 밤새 목이 부어 침이 잘 삼켜지지 않는 이물감을 느끼게 된다.

아침이 되자 마리는 목상태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불길한 기운이 드는 건 떨칠 수가 없다.

그래도 오늘은  선생님을 만나서 연습을 해야지 이제 고작 며칠밖에 남지 않았는데...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루를 꼬박 앓고 난 후 다음날,

학교 연습실로 찾아간 마리는  아아아 하며 소리를 내보았다. 목이 잠기고 소리가 아예 나지 않는다.

안드레아 선생님이 반주자와 함께 연습실로 오셨다.

"선생님, 저 목소리가 이상해요. 산엔 잘 다녀오셨어요?"라며 눈물이 글썽거린다. 서러움과 원망과 반가움이 뒤섞인 감정이다,

"미안해, 이렇게 큰 발표회가 있을지 모르고 너를 혼자 두었네. 마리 목소리가 영 상태가 안 좋은데?~ 발표회 때 성대에 무리가 갔나?"

선생님도 마리 목소리에 놀란 반응을 하신다.

"감기에 걸려서 그런 것 같아요 ,,,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예요."

하며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목감기에 걸린 마리는 목이 마르고 칼칼해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질 않았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선생님은 하루만 쉬어보자고 하시며 연습을 쉬고 다음날 병원을 찾아간다.

이비인후과를 찾아간 선생님과 마리.

"목소리가 안 나와요. 목에 돌 같은 게 박힌 것 같아요."

마리의 쇳소리 같이 갈라지는 목소리가 병실 안을 낮게 울린다.

의사 선생님은 막대기 같은 긴 도구로 목 속을 이리저리 살펴보시고

"성대에 이상이 생긴 게 보입니다. 결절 같은데... 내시경을 해봐야 자세한 건 알겠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며칠 후면 실기시험이 있는데 성대에 이상이 있다니 마리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심장이 오그라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검사가 시작되었다.


"여기 보이시죠? 왼쪽 성대양쪽이 부어있는 거 보이시죠? 성대를 무리하게 잘못된 발성 습관을 쓰다 보면 염증 반응이 생겨서 쉽게 말하면 성대에 굳은살이 생긴 거라 보시면 됩니다."

흰색 좁쌀 같은 굳은살이 튀어나온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외래에서 다시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마리.


"며칠 전부터 감기를 앓으셨죠? 감기를 앓고 난 후 음성이 악화된 뒤에 쉰 목소리가 그대로 결절로 영향을 받은 거고요."

"선생님, 제가 3일 후에 대학 실기 시험이 있어요"

하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다듬으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성대를 무리하게 사용하신 것 같아요 높은음을 과하게 발성하면 이런 증상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실기 시험은 볼 수 있을까요?"

"이 상태로는 어렵습니다. 2주 정도 관리를 해보고 안되면 음성치료, 약물치료, 온열요법 등 병의 정도에 따라 몇 개월 이상의 치료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물리치료하고  하루이틀 치료해 보고 그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갑자기 왜 그런 걸 까요?"

"처음엔 붓기부터 시작했을 테고 노래를 심하게 불렀을 때 빠르게 상태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계속 진행이 되어 온 걸로 보입니다."



물리치료를 하러 가는 병원 복도에서 안드레아 선생님과 마리는 긴 한숨을 내쉬며 대기실 의자에 앉는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이게 뭐지..."

갑자기 목소리를 왕자님의 생명과 바꾼 마녀와 인어공주가 떠올랐다.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님의 목숨을 대가로 목소리를 내주었지만 나는 목소리를 어디다 잃어버린 거냐고??...!'

마리는 이 시험을 위해 그동안 한 길만 달려온 그 과정들이 스쳐 떠올랐다. 멍해졌다.



3일 남았다. 물리치료를 하며 목상태를 봐도 낼모레까지는 어렵다. 이 상태로는 실기시험이 어렵다.

목소리라는 것은 호흡으로 시작해 성대에 진동을 일으켜 발음 기관, 입을 통해 나오는 건대 이런 상태라면 실기시험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마리의 진로는 어떻게 될까?




마리는 실기 시험을 치르지 못했고 재수를 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보건복지학부 간호대학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대학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셨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사별을 하셔서 혼자가 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대학 병원에서 수간호사가 된 마리는 약제실 앞에서 안드레아 선생님과 마리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어느덧 선생님은 60을, 마리는 50대의 중년의 사람들이었다. 선생님을 약제실 앞 의자에 자리를 내드리고 커피를  한 잔 뽑아드린다.

'선생님 맞으시죠? 오랜만이네요. 어쩐 일이세요? 누가 아파요?"

"어 약 타러 왔어. 이 병원에 있었구나, 간호대학에 들어갔다는 말은 전해 들었다."

"이게 몇 년 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그때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뵈었죠  저는 실기시험을 못 치렀어요. 한 1년 목소리를 찾으려고 고생을 했고 재수하면서 조금씩 나아졌어요. 제가 노래를 했다는 것은 병원에선 아무도 몰라요 그날 이후로 노래를 안 불렀거든요."

"그랬구나 잘 치료가 돼서 다행이다. 넌 노래에 소질이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리는 그때까지 살면서 궁금했던 그날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선생님 ~그때 말이에요  저 고3 때요  자전거로 집까지 데려다주시고 하셨잖아요? 세월이 오래 지났는데 가끔 그때 일이 생각이 나서요. 그렇게까지 저에게 하실 일이었나요? 언젠가 한번 뵈면 여쭤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인마, 네가 애제자니까 그랬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 선생님 제자가 한둘이 아니었잖아요. 다 그렇게 집까지 데려다 주신건 아니잖아요.?"

" 너랑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데려다주고 너를 만나는 시간이 참 좋았었다!"

"........선생님 저는 정말 몰랐어요. 어렵게만 생각했던 하늘 같은 선생님이라.. 말이라도 한번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하하"

"첫사랑은 하얀 눈 같은 거라고 하더라 첫눈, 발자국을 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순백의 아름다움 말이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은 그때 첫사랑을 하신 건가?난 왜 몰랐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사람의 마음은 참 모를 일이다. 그러면 말을 했었어야지 어떻게 사람마음을 아냐고!

멋쟁이 선생님~이제  머리는 반백이 되어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고 얼굴은 잔주름으로 살아온 나이를 가늠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마리도 성당에서 선생님이 처음 지휘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맘속으로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생님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이야기하시며

"그땐 어린 나이여서 순진했기에 말도 못 했다. 둘 다 어렸잖아 넌 10대 난 20대!"라고 하시며 귀까지 빨개지셨다.

"그런데  서로 같은 감정이었다면 그렇게 서로 연락을 끊고 헤어져 버리지는 않았겠지?"라고 씁쓸히 말을 흐리시며 약제실에서 이름을 부르자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바바리코트 주머니에 약봉지를 구겨 넣으시고 병원을 떠나셨다.

마리는 마치 동화 속의 키다리 선생님을 생각하며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병원 큰 창으로 빛이 길게 선생님 키만큼 내리비치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지리산 눈꽃구경을 가신 것도 제가 혼자 연습을 강행하며 성대결절에 걸린 것도 그래서 음대에 못 가고 이렇게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때는 어려서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반백년을 살다 보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마리는 이 말을 선생님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선생님을 또 만나게 된다면 생채기 났던 그 시절도 이제는 다 잊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마리는 남모르는 그리움 추억하나 오늘도 간직한다.


키다리 선생님,

음대를 가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인생에 있어  따뜻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건강하세요.






단편 1,2부를  읽어주신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브런치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되었습니다.

댓글과 구독은 달래를 춤추게 합니다. 열심히 읽고 따라가겠습니다. 2023년 여러 작가님들 만나게 된 해라 저에겐 너무나 소중한 해로 남습니다.

건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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