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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Oct 19. 2022

인생은 닭가슴살 같아.

갈수록 퍽퍽해지거든.

미혼시절, 친구들에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인생은 닭가슴살 같아.”

“왜?”

“갈수록 퍽퍽해져.”


당시 나는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일을 나갔고, 심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나마 일주일 중 단 하루 쉬는 날이 있을 때.

그때는 억지로라도 인연을 만들어보겠다며 소개팅을 참 많이도 나갔었다.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도, 또 당시에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조해줄 상대가 필요했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내 낮아진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땐 적절한 상대를 만나게 되면 내가 더 빛나고 자신감이 생길 거라고. 그렇게 믿었었다.


“저는 얼굴 잘생긴 사람이 좋아요. 제가 먹여 살리면 되죠!”


선배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 날 참 한심해하셨었다.

나도 안다.

내 말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하지만 회사에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내가 미혼인 동료와 밥만 먹어도. 또 모임에 참석해도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킬킬대곤 했다.

그걸 알기에 일부러 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이 회사에는 잘생긴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 난 그들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고.’


이런 의미로 이해해주길 바랐는데, 뒷담화 좋아하는 선배들이 내 뜻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리가 없지.

오히려 “나 정도면 잘생긴 편 아니냐?”

유부남 선배들의 이런 헛소리만 들려왔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인 것을 안다. 그저 당시에는 내가 그 말을 듣고 예민해져 질색했을 뿐.


일부러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오히려 내게는 독으로 다가왔을까.

선배들이 소개해준 남자들은 솔직히 말하면 다 외모가 준수했다.

그래서 처음엔 혹하기도 했다.


다만.

개인적인 아픔에 심취해 자기밖에 모르는 백수거나.

재산이 제법 있지만, 머리가 텅텅 비었다거나.

또는 지나치게 신앙심이 높아 주말에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거나.


얼굴만 본다는 내 말이 그때야 얼마나 모순적이었나 깨달았었다.

그랬다.

나는 지나치게 속물이라 얼굴과 성격은 기본으로 깔린 조건이었고, 그 외에 대화도 통하고 직업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그런 최고의 남자를 만나고 싶었던 거다.


근데 그 조건은 다른 모든 여성이 꼽는 최고의 조건이 아니던가.

그런 유니콘 같은 인물이 내 앞에 운명처럼 나타날 리가 없지.


차라리 결혼정보업체에 가입이라도 해볼걸.

그랬다면 내 주제 파악이 조금 더 빨랐을 텐데.


나이가 한두 살 계속 쌓여가는데도.

나는 여전히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이미 결혼했음에도 결혼에 여전히 관심이 없는 건. 타고난 성향인 거 같다.

(어른들 모르게 혼인신고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보면.)


나는 그저 연애가 하고 싶었을 뿐.

쌓여가는 나이만큼 꺼리는 조건은 더 늘어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아마 대학 시절 전 남친이었던 남자가 사정이 생겨 날 찾아오지 않았다면.

여전히 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냈을 거다.


지금이야 티키타카가 아주 잘 되는 전 남친이었던 놈을 남편으로 승진시켜주었지만.

지금의 남편은 내가 원하는 조건 그 어느 것도 충족되지 않았다.

아, 얼굴 하나는 봐줄 만한 것도 같고.

그런데 다시 사귀면서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저 남자랑 결혼하면 계속 이렇게 재밌게 살 것 같아.’


내가 침울해져 있으면 옆으로 달려와 웃겨주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땐 같이 화를 내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결혼을 앞두고 점을 보러 가셔서 이런 소리를 들으셨다고 한다.


“얘들은 부부 인연이 아니라 친구 인연인데?”


그랬다.

나는 결국 평생 친구로 남을 법한 사람을 남편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내 주변엔 미혼의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소개팅 요청에 내 주변 괜찮은 남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면, 돌아오는 것은 거절이었다.

친구들은 처음엔 변호사니, 5급 7급 공무원이니 하는 조건에 혹했지만. 남자의 사진을 보고 나면 실망했다.


“직접 만나 대화하면 괜찮은 사람이야.”


그렇게 변명해도 통하지 않았고, 결국 “마음에 안 들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끝났다.


그녀들이 어떤 마음인지 아주 잘 알기에 나 역시 두 번 권유하진 않는다.

아니 애초에 소개팅이란 말 자체를 나 역시 거절하고 싶다.

아무리 자리를 만들어줘봤자 잘 될 확률은 희미한걸.

오히려 왜 그런 사람을 소개해줬냐는 말만 듣지, 뭐.


미혼의 친구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소개해줄 사람이 없는 거다.


그저 민망해진 마음을 인생은 갈수록 퍽퍽해지는 닭가슴살 같다고. 그러니 조금 괜찮다 싶으면 빨리 낚아채라고 조언을 건넬 뿐이다.


그리고.     

“60 넘어서까지 남자 못 찾으면, 내가 시골에 자리 잡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내 근처로 이사와. 먼저 죽는 사람 묻어주는 걸로 해서 집성촌 같은 거 만들고 살자.”


이런 말을 농담 삼아 진담을 섞어 말한다.


이미 땅은 봐둔 상태다.

나는 은퇴 후 조그마한 텃밭 일을 하며 노후를 보낼 예정이고, 부디 내 친구들과 옆에서 함께 늙어가고 싶다.

그러니 조그마한 집만 지어 친구들과 근처에서 산다면, 나중에 남편이 먼저 하늘로 가더라도 외롭진 않을 거 같다.

(내가 먼저 가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술·담배를 하는 사람이라 남편 쪽 수명이 더 짧을 듯싶다.)

  

지금도 인생이 닭가슴살 같다는 내 생각은 변치 않았다.


다만 회사를 그만둔 이 시점의 나는.

스팀에 쪄서 조금은 더 촉촉해져 맛있는 닭가슴살 같다고나 할까.


한없이 낮아졌던 자존감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고 살만하다.


연봉 7천이 넘는 직업에서,

고작 한 달 인세 10만 원 정도 받는 반백수 작가로 변했는데.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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