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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미 Jul 16. 2023

덕곡마을 양파 밭에서

봉사활동의 클래식, 농촌활동 

6월 첫 정규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5월 기획회의에서 정한대로 우민이 기획한 농촌활동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일요일 날씨가 맑기를 빌며, 6월 11일에 농활을 진행하려고 해! 날씨가 좋으면 계획대로 양파를 수확하고 비가 오면 다른 밭에서 잡초를 뽑거나 간단한 일을 할 계획이야!
자기 차로 오는 사람은 6시까지, 밀양시 부북면 덕곡△길 ○○으로 바로 오면 되고 복지관 차량으로 오는 사람은 5시 30분까지 복지관으로 가면 된다! 개인 준비물은 팔 토시 또는 얇은 긴 소매 옷, 더러워져도 되는 신발, 모자. 장갑이랑 일할 도구는 내가 준비해놓을게! 


활동 전날 우민이 공지를 전했습니다. 지난 러닝활동에 모이는 시간을 미리 알려줬기 때문에 이른 아침, 아니 새벽에 모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었습니다. 


“우와, 나 그 시간까지 안 잔 적은 있어도, 일어난 적은 없는데.” 


아침 일찍 잘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은 되어도 그 때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불평, 불만은 누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복지관에서 여러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협조 했었지만, 저 역시 그 시간에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평소 잠드는 것보다 더 일찍 누웠지만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눈을 뜨면 12시, 눈을 뜨면 새벽 2시. 푹 자야 활동을 잘 할 수 있을 텐데 눈은 자꾸만 떠졌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알람 소리를 듣기도 전에 일어났습니다. 아직은 깜깜한 밤. 대충 씻고 모자와 장화를 챙겨 복지관으로 향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모두 모였습니다. 지난 걷기 활동에서 게스트로 참여했던 재혁도 함께 했습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논과 밭에는 일을 하고 있는 어르신이 보였습니다. 조용하고 작은 덕곡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어르신들이 먼저 인사해주십니다. 시골 외할머니집에 놀러 온 듯이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인사합니다.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들어가 형우네 외갓집에 도착했습니다. 형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저희보다 이른 아침에 오셔서 옥수수를 삶고 계셨습니다. 


“아이고, 반바지를 입고 왔네. 이거 하나 입어라.”


반바지를 입고 온 송현을 보고 우민의 할머니가 바지 하나를 내어주셨습니다. 분홍색 꽃무늬가 있는 고운 바지였습니다. 흰 양말을 신고 온 다람과 소영에게도 양말이 더러워진다며 그 위에 신을 수 있는 회색 양말을 주셨습니다.  


우민의 어머니가 앞장서서 양파 밭을 안내해주셨습니다. 옻나무가 있는 곳을 알려주시고 나무에 스치면 안 된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밭에 들어가기 전에 가져온 폰과 물병을 내려두었습니다. 


“이게 바로 디지털 디톡스네!”


7월 디지털 디톡스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하니가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간 양파 밭은 우민이 농사지은 밭입니다. 우민은 초보 농부로 올해 처음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밭은 400평 남짓. 농약도 치지 않고, 풀 관리도 많이 되지 않아 수확량이 적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어제 우민의 삼형제가 모여 양파를 뽑았고, 우리는 뽑은 양파의 윗부분을 자르고 썩은 양파를 골라내는 일을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작은 의자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밭고랑을 하나씩 맡았습니다. 아이 머리만한 큰 양파도 있는가하면 아이 주먹보다 더 작은 양파도 있었습니다. 양파를 들어 올려 썩은 것은 고랑으로 던지고 괜찮은 것들을 다듬었습니다. 


집에서 파 농사를 짓는 하니는 역시 손이 빨랐습니다. 함께 모여서 작업해도 하니만 저만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모두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한두 시간은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누며 했지만 세 시간이 넘어가자 말수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농사 아무나 짓는 거 아니네.”


“진짜. 회사 열심히 다녀야겠다.” 


“우민, 진짜 대단해.”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 했습니다. 중간에 소나기가 와서 혹여나 양파가 상하지 않을까 손은 더 빨라졌습니다. 마지막 밭고랑까지 끝나고 나서 구부렸던 허리를 펼쳤습니다. 고단했지만 동글동글 모인 양파를 보니 뿌듯했습니다. 


“얘들아, 이제 너무 더워. 그만하고 얼른 나와.”


우민의 어머니가 우리를 걱정하며 불렀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 다 내려놓고 얼른 와. 얼른.” 


들고 들어갔던 작은 의자를 다시 옆구리에 끼고 밭을 나왔습니다. 이런 일 해본 적도 없는데 너무 고생 많았다며 고맙다 하셨습니다. 일 잘하는 일꾼 한두 명이면 금방 끝날 일이었는데, 우리가 가서 오히려 신경만 더 쓰셨을까 걱정이었는데 어머니는 연신 저희 등을 쓸어주며 고생했다 하셨습니다. 


“어서 가서 밥 먹자.”




다시 외할머니 댁으로 돌아가니 거실에 맛있게 쪄있는 초당옥수수와 나무에서 직접 딴 살구, 푹 익은 백숙이 있었습니다. 이정도의 일값을 한 것인지 싶을 정도로 푸짐한 상이었습니다. 


“어머니, 음식 하시느라 너무 고생 하셨어요. 저희 이거 먹고 일 더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넉살좋은 다람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얘들아. 얼른 먹고, 더 먹고 푹 쉬어.” 


외할머니가 직접 키운 상추와 오늘 수확한 양파를 쌈장에 찍어먹고, 배가 부르다 못해 과할 정도로 백숙을 많이 먹었습니다. 함께 땀 흘리고 밥 먹으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많이 먹지 않는 소영도 두 그릇을 먹었습니다.     


몸에 힘도 풀리고, 밥도 든든하게 먹어 배부르니 나른해졌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마당에 자리 잡고 드러누웠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들렸지만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벽에 걸린 옛날 벽걸이 시계며, 서예 작품과 멧돼지 그림들을 보며 왜 시골 할머니 집에는 다 이런 것들이 있을까 하며 낄낄거리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모두가 떠드는 와중에 오늘 활동을 계획하고 초대하고 부모님께 음식을 부탁했던 우민은 고단했는지 잠이 들었습니다.




“너희들 사슴벌레 본 적 없지?” 


어머니가 바깥에서 사슴벌레 하나를 잡아와 보여주셨습니다. 얼른 일어나 벌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구경했습니다. 이십대 중반, 서른이 넘었지만 어머니 눈에는 모두 어린 아이인가 봅니다. 길을 지나가며 만났던 어르신도 아이들 보며 ‘어디서 왔노.’하며 반갑게 인사해주셨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과분할 정도로 환대 받았습니다. 즐겁고 따뜻한 추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챙겨준 옥수수와 살구를 들고 마무리 했습니다. 저마다 고생했다 이야기 해주고, 즐거웠다 소감 나누며 그렇게 아침 6시에 모였던 우리는 오후 1시가 되어 헤어졌습니다. 


소영 – 양파 수확은 처음으로 해봤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직접해보니 농부 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앞으로 양파를 썩혀 버리는 없을 것 같다. 날씨가 선선해서 덜 힘들게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형우 덕분에 수확의 기쁨도 맛보고 백숙, 옥수수, 살구까지 너무 맛있게 먹었다! 다들 양파로 뭘 해 먹을지 궁금하네. 나는 오늘 저녁에 양파절임 소스를 사서 삼겹살 구워먹기로! 정말 뿌듯하고 즐거운 농사활동이었다. 


송현 –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마지막까지 힘내서 양파를 모두 다듬을 수 있어서 너무 뿌듯했고 보람 있었다. 힘들게 일한 만큼 밥도 너무 맛있었다.(닭 국물이 계속 생각나!) 나는 양파를 많이 볶아서 카레 해먹을 예정! 모두 수고했어!


다람 – 지나가는 비에 손이 빨라지고 썩은 양파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나 힘들어질수록 말수가 줄어들었지만 짧게나마 수확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양파를 심고 키우고 돌보고 수확한 그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밥값을 해야지 하는 마음을 열심히 했다. (밥값은 한 것 같음.) 밭일하고 먹었던 백숙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우리가 수확한 양파뿐만 아니라 옥수수와 살구도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하니 – 너무 일을 적게 한 게 아닌가 싶긴 했찌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우민이 열심히 키워준 덕에 다른 고생 없이 즐겁게 수확의 기쁨만 누릴 수 있었다. 고마워! 수확한 양파로 열심히 요리해 먹었는데 맛도 있어서 두 배로 뿌듯하다. 살구에 옥수수, 백숙까지 너무 잘 얻어먹었다. 너무 너무 맛있고 감사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 


우민 – 친구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농사는 처음이라 생각한 것보다 일의 강도가 높아서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친구들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모두 일을 즐겁고 열심히 해줘서 초보 농부에게 너무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힘들었던 만큼 즐거운 추억이 많아 소감도 걷기에 비해 더 길고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복지관에도 양파 20kg을 나눠주셔서 감사히 받았습니다. 한 것 보다 받고 누린 것이 더 많은 활동이었습니다.   

  

저녁 7시, 우민의 제안으로 동네 호프집에 여덟 명이 다시 모였습니다.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몇 시간 전 새벽에 일어난 일과 양파를 다듬었던 이야기를 다시 나누었습니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풍성해졌습니다. 어느 때 보다 더 편안하고 격식이 없는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조금 늦은 저녁, 호프 집에서 빠져나와 정답게 인사를 하며 헤어졌습니다. 몇몇은 또 아쉬워 다시 모이는 듯 보였습니다. 청년 모임으로 관계가 쌓이고 풍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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