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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미 Jun 30. 2023

무해하고 유쾌하게 약병 거절하기

플라스틱 일회용 약병 대신 다회용 실리콘 약병 사용하기 

날씨는 환절기를 지나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어린이 병원은 감기 환자로 가득하다. 우리집 일곱 살 어린이도 지난 달 고열의 감기를 극복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콧물이 주르륵 흐른다. 감기가 더 심해지기 전에 병원을 가야한다. 명품을 구매하는 백화점 오픈런보다 더 치열하다는 병원 진료 오픈런. 병원 문을 여는 9시에 맞춰가면 이미 오전 진료를 보는 것도 힘들정도로 대기가 많은 요즘, 최소한 8시쯤엔 병원 입구 진료 대기 명단에 이름을 쓰고 나와야 안심이 된다. 


여기저기 기운 없고 기침하는 어린이가 병원을 가득이다. 그중에 아직 살만한 아이들은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병원 여기저기를 종종 걸으며 돌아다니고 그 뒤로 나처럼 푸석푸석한 얼굴의 부모들이 아이를 따라다녔다. 아직 버틸만한 아이 중의 하나였던 다미도 병원 구석에 있는 책 몇권을 꺼내 구경하다가, 정수기에 물을 마셨다가, 미술학원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며 '너는 어디 아파서 왔니? 나는 콧물이 나서 말야.'라며 일곱살의 사회성을 보여주기도 하며 병원을 누볐다. 


"목이 좀 부었네요. 코가 목 뒤로 넘어가고 있어요. 아직 숨 소리는 좋아서 엑스레이 사진은 안 찍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삼일분 약 처방 해드릴게요." 


친절하지만 어쩐지 AI 기계처럼 비슷한 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숨 소리는 좋다.'라는 말이 큰 위로와 안도가 되었다. 숨 소리가 좋지 않다는 것은 폐렴 증상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입원을 할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처방전을 어린이에게 건네주고 병원 1층 약국으로 갔다. 요즘 감기가 유행해서 아이들이 진료를 많이 보기 때문에 약국은 물론 약국 앞 학습지 홍보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약국에서 약만 사는 거야." 


약국 입구에서부터 반짝거리는 눈으로 들떠있는 어린이를 보고 얼른 얘기했다. 마음에 쏙 드는 무언가(공주 코디 스티커북, 색칠공부, 캐치티니핑 비타민, 초콜렛 유산균, 비타민 젤리 등등)가 생기기 전에 말이다. 


입이 튀어나온 어린이를 데리고 약사님께 약 복용법을 들었다. 약사님은 약 설명을 얼른하고 다음 어린이의 약을 만들기 위해 얼른 제조실로 가셨다. 계산을 하는 선생님이 재빠르게 카드를 받아 서명을 하고, 플라스틱 약병을 한움큼 약 봉투에 넣으려는 순간, 


"어머님은 약병 필요없다고 하셨죠?" 아차, 하고 약병을 약 봉투에서 빼냈다. 


"네, 맞아요. 선생님." 


단골 식당에서 내 식성을 알아주는 것 만큼이나 반가운 마음이다. 나는 최근 플라스틱 약병 대신 다회용 실리콘 약병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 정도 약병을 안 주셔도 된다고 얘기했었는데 그걸 기억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보통의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환경을 생각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로 했다. 현대 사회의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환경 오염을 전혀 하지 않고, 도시 문화 생활을 누리지 않으면서, 자동차 대신 걸어다닐 수도 없고(심지어 자전거도 못 탐), 플라스틱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없지만 적어도 '일회용품' 사용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물건을 오래 사용하거나 재사용 또는 재활용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도 삶은 충분히 무해하고 유쾌해진다. 


슬기로운 약 복용 생활을 위해 실리콘 약병을 사용하기로 했다. 보통 3일분의 약을 받으면 2~3개의 플라스틱 약병을 약국에서 받아 온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2~3개 받은 약병을 3일 동안 씻어가며 사용하고 이후에 버리지만 약병을 씻기 귀찮거나 혹은 약병이 제대로 씻겨지지 않는 것을 염려하거나 또는 예쁜 약병을 쓰고 싶어서 약국에서 더 많은 약병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100개씩 개인적으로 구비해 한번 약을 계량해 먹고 버리는 가정도 더러 있다. 그렇게 한번 쓰고 버려지는 약병들은 몇백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더 작고 작은 알갱이가 되어 지구와 내 몸 속에 쌓이게 된다.


실리콘 다회용 약병은 끓는 물에도 소독이 되고, 실리콘 재질이라 미세 플라스틱 걱정이 없고, 싱크대 한켠에 플라스틱 약병이 쌓이지 않아 좋다. 무엇보다 작고 가벼운 약병 몇 개 줄인 일로 묵직한 뿌듯함을 얻을 수 있다. 작은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지구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대단한 일은 아니더라도 내가 선택하고 이롭다고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지켜내고 이어나갈 수 있는 길의 한 방법이기에, 그 길에서 만난 너른 들판과 꽃, 반짝이는 강의 물결처럼 즐겁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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