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내친구 이뭉치
뭉치는 구남친의 강아지다.
뭉치는 도련님이다.
이 두 가지 말은 모두 사실이다.
그래서 이 둘 중에 어떤 게 더 자극적일까 고민했다.
아마 쇼츠나 릴스에 도파민이 넘쳐나니
독자에게 어떠한 문장을 줘야 군침이 싹 도는 루피처럼
구미를 당길 수 있을지, 잠시 막장 드라마의 작가가 되어보았다.
그러나 수필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다시 정제(?)하여 글을 써 내려가본다.
그렇다. 뭉치는 도련님이다.
국어사전에 도련님은
'도령'의 높임말,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을 높여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등재되어 있는데,
뭉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속하는 강아지다.
뭐 요즘에는 가부장제의 호칭을 폐지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냥 뭉치를 "정확히 따지자면 도련님이죠"라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뭉치는 내 구남친이자 현남편인
가정의 강아지였고 내가 결혼하면서
함께 살게 된 나의 강아지다.
내가 뭉치를 처음 만난 건 영상통화였다.
때는 코로나로 전 세계가 록다운이 되어있던 시절,
구남친과 나는 해외 롱디를 하며 3년 넘게 서로의 핸드폰 속에 갇혀있었다.
모두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냐고 하는데,
그건 말이죠... '사랑'이라고 할까요. 후후후
큼큼 아무튼,
마스크로 인해 인중에 맺힌 땀을 두드리기에 바빴을 무렵
구남친은 내게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하... 미친...'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귀여웠다.
내가 입양하는 것도 아닌데, 행복했다.
새로운 가족이 온다니 정말 기쁜 일이었다.
그 이후로부터 나는 구남친이 보내오는
뭉치의 사진을 기다렸고 설레어했다.
후니와 페이스타임을 할 때
이따금씩 등장하는
이 깜짝 게스트 덕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날도 많았다.
깻잎을 물고 다니는 작은 슈나우저라니,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랜선누나가 되어 뭉치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뭉치는 반년동안 후니와 함께
핸드폰 속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마음속 반려동물이 되었다.
구남친이랑 헤어지고 나서
그 집 강아지가 그리워 문자를 했다는 썰의
화자의 심정을 한 백만 번 이해할 만큼의 심정이었다.
뭉치는 나에게도 있어 귀한 강아지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고
구남친을 만나러, 뭉치를 만나러 뉴질랜드에 가게 되었다.
3년 6개월,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한 시간이었다.
아이유의 시간의 바깥이라는 곡의
'드디어 기다림의 이유를 만나러'가사처럼
그 눈물 나고 감격스러운 재회의 순간에
뭉치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뭉치와
한 달간 동안 상견례(?)를 시작했다.
실제로 그 기간 동안 우리의 결혼이 결정되었으니
상견례라는 표현이 분명하다.
우리의 못다 한 그리움의 표현을 하기 부족하고
행복을 채워 넣으러 바빴던 그 짧은 기간 동안,
뭉치는 내게 넘치는 사랑을 담아주었다.
사실, 오랫동안 키운 비글 쨔몽이를 보내고
펫로스를 겪은 우리 가정은
다시금 반려동물을 키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나 역시도 그러하였다.
그런 내게 있어, 뭉치는 더욱 특별한 '도련님'으로 다가와준 것이다.
또한, 뉴질랜드살이, 결혼이주에 있어
걱정과 두려움도 있었으나
사랑하는 후니와 뭉치와 함께 살게 된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무한한 용기를 샘솟게 해 주었다.
뭉치는 그만큼 내게 있어,
아주 특별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