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내 친구 이뭉치
결혼 이민 후 나는 여러 번 좌절해야 했다.
아무래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는
많은 것들이 허락되지 않았다.
우선 일을 할 수 없었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도 없었다.
마트에 갈 때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누군가를 만나서 인사할 때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운전대를 잡고서도 주눅이 들었고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원대한 질문 앞에서는
한 없이 울어버리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특히 이민을 한지 두 달쯤 되었을 무렵,
나는 '이건 첫 번째 레슨,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철저히 실패했다.
임출육의 첫 번째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곳에서 찾아온 새 생명은
내게 무한한 용기와 함께 무한한 두려움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런 내 두려움을 읽기라도 했던 건지,
찾아와 주었던 새 생명은 일찍 내 곁을 떠났고 나는 초기유산을 겪었다.
임신테스트기도 비싸고
그 결과에도 일희일비해야 했던 임신의 세계에서
나는 유산이라는 것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많은 감정들과 사건들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칠 때,
가족들은 내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뭉치가 있었다.
뭉치는 나의 첫 번째 임신과 유산을 함께 겪어주었다.
심지어는 내가 임신인지도 모를 무렵부터 뭉치는 나의 곁을 지켰다.
임신 극초기인지 나조차도 모를 무렵, 자꾸만 잠이 오고 늘어지곤 했다.
이민을 온 스트레스가 이제야 몸으로 나오는 걸까라고 생각할 때마다
뭉치는 나의 상태를 살펴주었다.
그리고 무엇을 아는 듯이 손을 핥아주고 얼굴을 핥아주었다.
뭉치는 원래 배 위에 올라와 안겨 있는 걸 좋아했는데,
그 무렵 뭉치는 내 배 위에 올라오지 않았다.
임신인 걸 알고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뭉치가 내게 보내는 신호였나라고 생각하며
뭉치의 예쁜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산책하다 보면 쉽게 만나는 뉴질랜드 엄마들을 생각했다.
그녀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나시티와 레깅스를 장착한 채로
힘차게 유모차를 몰며 러닝을 했다.
간간히 강아지도 함께 데리고 다니는 멋진 엄마들의 모습.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엄마들'의 모습이어서
나는 한동안 그 모습에 감탄하곤 했었다.
그녀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태어날 새 생명과 함께 뭉치와 산책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물론 유교걸이라서 민소매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겠지만,
그래도 나도 멋진 키위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상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무래도 '상상(想像)'이니까, 그랬던 것이라며
나는 서둘러 마음을 다잡았다.
이 슬픈 감정이 나를 삼켜버리거나
끝없는 심연으로 끌어드리지 않도록 별일 아닌 것처럼
쉽게 털어버리고자 애썼다.
그러나 낯선 나라 땅에서 낯선 언어로
유산을 설명받았던 기분은 아직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옆에는 남편이 있고 열심히 그들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이야기해 주고 있었지만,
세계가 철저하게 분리된 것만 같이 아득히 멀어지는 듯한
그날의 장면은 내게 선명히 남아있다.
남편과 나는 이 유산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드려고 노력했다.
우리에게는 또 기쁨이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 일이 아닐 수 없었기에
우리 두 사람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슬픔을 해감하고 있었다.
한동안 외출도 하지 않고 실의에 빠져있을 무렵,
뭉치는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그런 나를 열심히 핥아주었다.
강아지의 '핥아주기'는 애정표현이다.
사랑의 표현이자, 보호를 해야 하는 존재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표현이다.
어떤 말로도 어떤 사람의 언어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무렵,
뭉치는 나의 눈물 콧물을 모두 핥아주었다.
괜찮아졌다가 안 괜찮아졌다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
뭉치는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며
그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뭉치의 사랑을 받으며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고
다시 뭉치와 산책을 하며 무너졌던 일상을 찾을 수 있었다.
수많은 좌절을 맞닥뜨려야 하고
수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상에서
뭉치는 나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