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내 친구 이뭉치
한국어로는 강아지 유치원,
영어로는 DAYCARE(데이 케어)라고 부른다.
뉴질랜드의 데이케어들은 보통
4시간 8시간을 선택할 수 있으며
가격도 4시간에 20불, 8시간에 25불이다.
물론 지금 물가가 올라서 4시간에 25불, 8시간에 30불로 올랐다.
뭉치를 강아지 유치원에 보내야 했다.
이유는 이 크레이지 한 에너지를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었고
뭉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친구 미친犬이었기에,
많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가장 좋은 것에 관하여
뽀로로와 견주어 본다면,
우리 뭉치가 거뜬하게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뽀로로는 자주 삐지거나 화나거나 슬프던데,
우리 뭉치는 친구들과 노는 동안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물론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이들을 키워낸 뽀로로와
뭉치가 견준다는 것에 뽀로로 팬들이 비교 자체가 안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노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은 이뭉치다.
그냥 '처음 만난 친구'라면 그저 다 좋다.
그래서 뭉치를 데이케어를 보내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데이케어,
강아지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등록된 강아지여야 하고, 중성화를 마친 강아지여야 한다.
두 번째는 백신 접종(정기검진에서 맞는 백신) 기간이 경과되지 않은 강아지여야 한다.
백신 접종 기록은 주로 동물병원에서 접종 수첩에 부착해 준다.
만약 이 기록이 없다면 동물병원에서 메일로 관련 서류를 증빙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허용된 이후에 강아지 유치원에 갈 수 있다.
뭉치는 이미 데이케어를 경험했던 강아지였기에, 수월하게 강아지유치원에 갈 수 있었다.
우리의 결혼식이 한국에서 열렸고 모든 가족들이
한국에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뭉치는 강아지 호텔에 2주간 정도 머물러야 했다.
그 연습을 위해 데이케어에 방문했었기에
한동안 가지 않았던 강아지 유치원에 재방문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사람은 나이니, 뭉치의 픽업, 픽드롭은 내 몫이었다.
나는 운전, 영어의 앞에서 또 두려움을 느꼈다.
난 사실 한국에서 베스터 더라이버~~~이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카트라이더로 조기 교육을 아주 철저하게 받은 사람이거니와
아버지와 오빠는 화물운전을 하였기에 내 몸에는 핸들 DNA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역시 나는 화물운전사 가문에 장녀답게, 장내 기능 시험도 만점으로 통과했다.
도로 주행 역시도 1회에 85점으로 통과한 사람이었다.
난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제천과 가평을 거의 매주 오고 갔으며, 강남에서도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 운전좌였다.
그런데, 뉴질랜드에 오자마자 나는 운전대를 잡은 쫄보가 되었다.
차량 운전자 좌석도 반대고, 차선도 반대인 이 나라.
한 번은 약간 승부욕을 자극한 남편덕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역주행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이민온 후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운전은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었기에 겁이 났다.
물론, 그 정도로 난폭운전을 하지는 않겠으나 사고 이후에도
스스로 사고를 수습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런데 뭉치를 데이케어를 보내기 위해서는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다.
고맙게도 아갓쉬가 뭉치를 출근할 때 내려주고
돌아올 때는 내가 데리러 가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걱정된 남편이 주로 픽드롭을 맡아준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나는 조금씩 용기를 내었다.
뭉치를 데리러 가면 오늘 뭉치가 어땠는지 궁금한 나는
"How was Moongchi?"를 백번 연습해 갔다.
물론 리스닝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 말을 던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운전을 하면서도 두근두근 이 말을 계속 연습해 갔다.
사실 내 할 말만 연습하기는 모든 대화에서는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리고 면접을 이렇게 준비한다면 떨어질 확률은 거의 2만 퍼센트에 달한다.
그렇지만 내가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니고, 저 사람하고 사귈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 되겠어!
나는 속으로 방탄소년단의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첫 가사
'모든 게 궁금해, How was your day'를 읊으며
데이케어씬의 나의 첫 대사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어떤 날은 다 못 알아듣는 날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반년 정도 살아내고 나니 어느 정도 귀가 트였다.
물론 앞 구르기 하며 봐도 뒷구르기하며 봐도 '아시아인' 같이 생긴 나를 위한
키위 트레이너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인 것도 있다.
그들은 내 서툰 영어를 인지하고 나서는 천천히 말해주고 때로는 써주기도 했다.
얼마나 친절한지, 나는 뭉치 덕분에 또 이렇게
키위들의 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트레이너 선생님들,
강아지를 맡기러 오는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서툰 영어이지만 뭉치 덕분에,
그 사람들과 함께 눈을 맞추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외국인을 만나면
Do you know 강남스타일/ 블랙핑크/ BTS/ 싸이/ 김연아/ 박지성/ 손흥민
이제는 케데헌 혹은 두유노 골든까지 하겠지만, 아무튼 두유노클럽을 물어보곤 한다.
역시 나는 한국인이었다.
나는 데이케어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자신감을 얻고 난 이후,
이 무렵 "Do you know 강유?"를 달고 살았다.
강아지를 산책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아지 유치원의 이름을 대며
거기를 아는지, 보내고 있는지, 우리 뭉치는 거기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아마 돌이켜 보건대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해외이민을 한 지 1년 정도 되어갈 때, 나는 '소속감'을 상실한 기분을 철저하게 느꼈다.
난 한국에서는 항상 어디에 '소속되어 있던'사람이었다.
그것이 종교건, 학교건, 직장이건 간에 나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철저한 이방인으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서 "두유노 강유?"는 소속감을 드러내는
혹은 그 사람과 나의 공통점을 찾기 위한 나만의 수단이었다.
물론 그 소속감과 '두유노 강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뭉치가 데이케어에서 모든 시간을 채우고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고
데이케어를 갈 때마다 신나서 뒤도 안 돌아보던 뭉치가 머뭇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갓쉬와 나는 뭉치가 혹시 무서워하는 강아지나 싫어하는 강아지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치원을 보내고 나니 진짜 보호자 모드가 되어서 이것저것 가능한
시나리오를 써보게 되는 것이었다.
데이케어에서 뭉치가 계속 짖는다고 데리고 돌아가라는 전화를 3번 정도 받았을 때쯤,
그리고 뭉치가 데이케어를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때쯤.
나는 두유노 강유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안티 강유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원래 팬이 돌아서면 더 무섭다고 나는 안티 강유를 외쳤다.
나에게 데이케어 어디 보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강아지 유치원 이름을 알려주면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고 사람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들의 친절함과 따뜻함보다는 뭉치가 그곳을 싫어한다는 게 중요했다.
물론 뭐, 내 소속은 처음부터 이뭉치와 내 가족이었으니까
대관절 두유노 강유가 뭔데를 시전 하며
뭉치가 싫다는 곳은 나도 싫다를 외치면서 안티 강유로 돌아섰다.
아마 그 무렵, 산책하면서 알게 된 뭉치의 산책메이트 페퍼아저씨도
안티 강유 클럽에 가입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가입했다는 것은 아니고,
우리는 산책하면서 함께 그 데이케어가 얼마나 이상해졌는지
요즘 얼마나 많은 강아지를 받는지 모르겠다는 둥.
강아지 유치원에서 강아지 데려가라는
전화를 몇 번 받았다는 둥의 공통점을 쏟아내며
함께 안티 강유 클럽이 되었다.
이외에도 안티 강유 클럽은 몇 명 더 있었는데,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안티 강유 클럽을 외칠 무렵 나는
새로운 소속감을 느낀
'슈나우저 모임'을 방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