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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글장 Feb 13. 2024

20대에 찾아온 뇌경색과 도피결혼

그리고 혼전임신

"남보다 못한 가족이야 우린, 알고 있지?"


바야흐로 5년 전,  나는 2년째 연애 중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했다. 남들 눈에는 그저 철없는 남녀의 웃픈 해프닝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결혼은 이 지독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라 생각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100일 무렵부터 중학교 때까지 외할머니랑 살던 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는 대학생활하며 타지에서 자취를 했다. 그렇게 세월이 조금 흘렀고 25살 무렵 나는 성인이 되어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그 당시에도 엄마의 몸이 안 좋아져 곁에 살며 도와달라는 불음에 달려온 것인데,

웬걸, 오랜 기간 떨어져 살던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소통은 부재가 아닌 완전소멸되었고 눈 맞춤이 아닌 원망 섞인 눈빛뿐이 없었다. 큰소리 나는 대화가 일상이었고,

서로의 배려 따위는 개나 줘 버려 그런 류의 삶?




타인에게 세상 다정한 부모님이 하나밖에 없는 딸에겐 어찌 이리도 무심하실까. 매일밤을 울며 보냈다.

삶의 바람이 사라지고, 욕심도 없어졌다. 고장 난 마음이 계속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춤의 신호를 보냈음에도 나는 모른척했다.


그날도 서로에게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았는지 비난의 칼이 혀끝에서 날아왔고 머리를 관통했다.

엄마가 남긴 말 한마디가 피가 되어 눈물로 흘렀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야 우린, 알고 있지?"


그 정도였나, 남보다 못하다고? 하긴 이게 가족인가.. 엄마야 말로 딸한테 이래도 되나, 그날은 유난스럽게도 슬펐다. 아니 억울했다. '난 당신의 아픔을 돌보러 온 사람이야. 내 할 일을 모두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병명은 일과성 허혈발작, 뇌경색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울다 다음날 출근을 했다. 태어나 처음 겪는 두통. 감사팀 방문으로 신경써서 그런가 싶었지.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몸은 더 이상해졌다.


당시 뇌경색 전조증상

1. 머리와 눈이 쏟아질 것 같은 통증, 양쪽 시야의 흐림

2.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신발이 자꾸 벗겨지더니 다리가 움직이지 않음, 오른팔 무감각

3. 말의 어눌함에 이어 대화 불가능 (알아듣지 못함)

예) 의사: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나의 답 : 왜 그래?

4. 기절, 발병 당시 기억 리셋


정신을 차리고 처음 본 장면은 고개 숙인 엄마와 아빠,

그리고 깊고 진한 한숨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누운 곳은 J 대학병원 뇌졸중센터 중환자실.


당시 진단서

  

그렇게 나는 20대에 뇌경색이 찾아왔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2차 상급병원에서 막힌 혈관을 뚫는 혈전용해제를 적절히 써 감사하게도 나는

오른편마비만 약하게 왔다.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 혈관이 막혔다 풀린 곳을 찾았으나

교수님은 스트레스로 인한 일과성(잠시 왔다감) 허혈발작, 뇌경색이라 말씀하셨다.


원인파악을 위해 3일간 대학병원에서 온 검사를 다했지만 결론은 원인불명. 딱히 치료도 없어서 약이라곤

혈전을 예방하기 위한 아스피린이 전부. 우선, 편마비 회복에 전념키로 하고 회사는 휴직계를 냈다.

근데 잠깐 왔다간 거라기엔 좀 가혹했다. 혼자 숟가락을 들 수도. 계단을 오를 수도 없었으니..



이후, 2차 상급병원 재활의학과로 옮겨 입원 후 운동치료를 했다.


뇌경색 운동 치료 종류

1. 계단 오르락 내리기

2. 고무공 쥐었다 펴기

3. 멈췄던 뇌 살리기 운동으로 틀린 그림 찾기

(단어가 바로 생각이 안 나고 멍-(청)해짐)

4. 러닝 머신

5. 마사지

6. 짐볼을 이용한 근력운동 등

-그 외 산책이 추가되었고, 특별한 건 없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1시간이 넘는 회사의

출퇴근을 병원에서 했고 내 곁을 지켜줬다.

그때 알았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내 남은 생을 함께해도 좋겠다 싶었다. 불안에 극도로 예민한 내가 유난히 남자친구와 있으면 안정이 됐다. (이건 지금도 변함없음)


불면증과 식욕을 잃은 내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정신과 쪽으로도 한번 알아보지 그래?" 그땐 이 말이 왜 그리 서운한지 귀에 안 들렸다.

"뭐? 내가 정신병이라고?" 근데 정답이었다. 원인조차 찾을 수 없던 건 마음이 준 신호였기 때문이지.




결혼식 일주일 앞둔 임신 6개월 차

석 달 정도 치료 끝에 퇴원한 나. 그러나 부모님과의 관계는 여전했고 회복불가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이라곤 결혼밖에 없단 생각을 했고, 앞서 말한 혼전임신으로 도망치듯 집에서 나왔다.


이제 다 끝났구나 싶었다. 친정집에서 나옴으로써 나는 조금 더 생활이 자유로워질 테고, 이제 남편과 내 아이와 행복한 삶을 살면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었고, 자유로움을 갈망했던 내게 육아는 나를 더 고립시켰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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