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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글장 Feb 16. 2024

36주에 낳은 조산아, 산모님 응급입니다.

태반조기박리에 관하여




혼전임신과 도피결혼으로 도망 나온 사람

20년 01월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이라 할 것 없던 7개월의 임산부, 그게 바로 나다.


난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남들은 임신하고 감정기복이 심해져 우울증도 온다던데

그저 나는 이 아이와 남편에게 정말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다짐뿐 우울할 틈이 없었다.



친정과 떨어져 지내니 부딪힐 일도 줄었고, 초산엔 많이 움직이래서 운동도 곧잘 했다.

특히 요가를 진짜 오래 했다. 이땐 몸을 많이 쓰다 보니 별로 어두운 감정에 갇혀 살진 않은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부인과에서 다음 달이면 출산이니 걷는 것도 열심히 하고 쪼그려 앉아 걸레질 같은

포징도 취해보라 하셨다. 아이를 위해서라 생각하니 싫어하는 것도 참 재밌더라! (운동극혐자)

그날은 조금 욕심을 부려 2시간을 내리 걷고, 거실 바닥 걸레질까지 했다.

배가 좀 뻐근하긴 했지만 뭐 곧 막달이니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주변에서도 그리 말했었고.




문제의 그날 밤 


남편과 친정일로 언쟁이 있었는데,  사실 이건 다툴 일도 아니었다. 서로의 다른 감정을 말했을 뿐.

내게 참 못한 부모지만 그래도 딴에는 부모를 나쁘게 말했던 게 싫은 모양인지 온갖 짜증을 냈다.

그렇게 기분 나쁜 상태로 씩씩대며 잠들었다.


사건의 발단


1. 새벽 3시경


다리 아래로 침대가 매우 축축했다. 임신하면 분비물 같은 게 많이 배출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건 줄 알았다.

찝찝한 건 또 못 참는 사람이라 화장실 가서 속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다리사이로 피가 쏟아지고 있던 것.


너무 놀라 남편을 깨웠다, 서로 풀지 않고 잠든 터라 퉁명스럽게 "피가 얼마나 나는데 -" 하고서

변기와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더니 놀라던 표정,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남편은 가뜩이나 피 보는 거 끔찍이 싫어하는데.. 외려 담담했던 내가 일단 병원을 가자며 진정시켰더랬지.



사건의 전개
로컬 산부인과 출산센터

2. 새벽 5시경


우린 대충 준비하고 집 근처 응급실로 갔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라면 잘 아는 치욕의 순간 내진을 해보니, 자궁문이 2센티 열렸다네?!

여기선 출산을 해줄 수 없으니, 서둘러 다니던 로컬로 가라는 것. 아니 응급이라며?.. 그때까지 출혈은 계속해 있었다.


1시간이 걸려 이동해 도착한 본래 다니던 병원-

출산센터로 들어가니 여러 가지 기계를 온몸에 붙이고 간호사분들이 수시로 체크를 해주셨다.

몇 분 뒤 담당주치의 선생님뜻밖의 말씀에 심각성을 느꼈다.


"산모님, 지금 출혈이 너무 심해요. 이대로 있다간 엄마 아이 모두 위험해요. 정말 큰일 납니다.

우리 병원엔 신생아 중환자실도 없고 수혈도 안 돼요. 응급입니다! 큰 병원으로 갈게요"


이 말을 듣고 어느 부모가 멀쩡할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마치 어둠에 갇힌 기분.

뭘 어째야 하나, 아니 아기는 괜찮은가? 나는 상관없어 아이만 살려주세요..


조용한 출산센터 복도- 분주한 의료진들의 통화목소리만 들린다.


사건의 위기


출산 직후 찍은 아기

3. 오전 10시 


우린 전원(타 병원으로 이동) 절차가 끝났다는 소식에 바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나는 불안했고, 특히 불안에 취약했던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


도착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출산센터 나는 분만실 옆 대기실에 누웠다.

수술환자가 많이 밀려 내 차례는 한참뒤에야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났다.

진통은 둘째치고 혹시나 아기가 위험하진 않을까 해서..




태반조기박리인 것 같아요, 양수도 새요.

출혈의 원인을 찾으려 여러 검사를 한 끝에 태반조기박리가 의심된다 고 하셨다.

게다가, 양수테스트를 해보니 양수도 조금씩 새고 있던 것. 어쨌거나 오늘 안에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


 태반 조기박리란

임신 20주 후에 정상적으로 자리 잡은 태반이 자궁벽에서 떨어져 나와 분리된 것을 말한다.

이때 많은 양의 출혈 발생 시 빠른 시간 내에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

산모에게 저혈압이나 혈액 응고 장애가 올 수 있고, 태아의 사망확률이 높다.

- 모든 최악의 수가 내게 일어나고 있었다.




사건의 절정
중환자실 가기 전 신생아실에서 응급처치 중

4. 오후 4시경


억겁의 시간이 흘러 내 차례가 되었다. 무려 출혈발생 12시간 만에. 많은 양의 하혈로 인해

혈압이 조금 떨어져 있었고, 혹시 모를 호흡곤란을 대비해 하반신 마취로 진행했다.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출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자 안심이 되었달까,

이제 이 아이를 잘 키워야 지란 생각부터 오만가지 감정이 나를 덮었고 정말 많이 울었다.

마치 아이를 잃은 엄마처럼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거의 미친년 수준으로 '이 여자야 좋은 일에 왜 우럭'

출산 경험자가 아니면 설명조차 하기 힘든 요상시러운 감정이었다.


생각보다 아이는 너무 작았고 연약해 보였다. 괜히 짠-한 느낌, 쭈글쭈글 할머니 같기도 하고?

예쁘게 생기진 않았네 싶었다. 어쨌나 수술천에 작은 입맞춤을 한 뒤 신생아실로 보내주었다.

티브이나 영상에선 캥거루케어?라고 아이를 안아보게 하고 그러던데 코로롱시국이라 그랬는지

얼굴만 쓰윽 비치곤 데려가더라.


어쨌거나 세상 요란스럽게 태어난 우리 아기. 태명 햇살이다. 밝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음 해서 지어줬는데 햇빛을 빨리 보고 싶었던 건지 한 달 일찍 세상에 나온 미숙아, 아니 이른둥이다.

2.7킬로라는 작은 몸무게로-




어머니 아기 중환자실로 가야 합니다.


신생아실 5일째로 곧 퇴원할 날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청색증이 왔다며

NICU -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간다. 그 당시 코로나가 엄청나게 퍼질 때라 병원방문도 어려웠고,

일절 면회가 안 됐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 머물던 산후조리원을 퇴소했다. 아이 없는 조리원은 지옥이더라.


중환자실에 있던 아기는 젖병 수유를 하면 숨쉬기가 곤란해 청색증이 왔기에 콧줄로 밥을 먹었다.

또 산소포화도 수치를 올리기 위해 산소 주입도 하고. 그 작고 여린 게 고생했을걸 생각하니 아직도

목구멍이 콱 막힌다. 그땐 더했지 말도 못 해-

심장이 뭉개지는 듯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최악인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20년 5월 2일~5월 14일

직접 겪지 않고는 모를 일,  남들에겐 한 달 미숙아? 별일 아니겠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그날.

그렇게 우린 우린 부모가 되었고 되었지만 당장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건의 결말



퇴원 후 집에 온 아기모습

5. 20년 5월 14일


다행히 NICU에선 일주일정도 살았고, 초음파 상 폐기능이 많이 나쁘진 않다는 희소식을 듣고 퇴원했다.

지겹고 지옥 같던 그 병원을 탈출했다. 겨우 완전체가 된 우리 셋이 되어 집으로 왔다.

한동안 남편과 나는 수유할 때마다 아이의 청색증이 올라올까, 혹여나 자다가 숨이 끊길까 - 잘 쉬고 있나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기 일쑤,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운 우리 아들이 벌써 2024년 올해로 만 4세가 되었다.

세상 말 안 듣는 꼬맹이! 미운 아니 돌아버린 다섯 살 , 키 106센티 몸무게 17킬로 대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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