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째 정의구현-폭행치사

출근길 에피소드 1. 층간소음

by 한민재

"띵동~"


"........."


"띵동 띵동~"


"누구세요?"


"아랫집인데요"


매일 아침 윗집은 항상 똑같았다. 알람 소리보다 빠른 아침 5시 반쯤, 샤워실로 들어가 욕조에 샤워기를 던져놓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듯했다. '쿵~' "쿠쿠쿠쿵~"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쿵~'이라고 하기에는 울림이 컸고, '텅~'이라고 하기에는 우리 아래층까지 이어질 거 같은 깊은 소리였다. 소리가 컸기에 금세 이것의 근원이 윗집 욕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욕실에서 이러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물체가 뭘까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샤워기'로 단정 했다.


"뭔 놈의 샤워를 저리 요란스럽게 한데?" "아니 저렇게 욕조에다 툭툭 던지면 샤워기 안부서지나?"


몇 주간 툴툴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나와 와이프는 이 현상이 계속 이어지자 한계는 점차 극에 달해갔다.


"아니 윗집은 샤워를 하면서 왜 자꾸 샤워기를 욕조 위에 던지는 거야?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윗집에 직접 찾아갈까?"


"아냐 오빠. 가면 불법이야. 가서 좋은 소리도 못 들어"


"아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아냐 그래도 무조건 관리사무소 통해야 돼 오빠. 그냥 오늘 관리사무소에 컴플레인 넣자. 오후에 전화하자"


당장이라도 버선발로 날라차기 후 가위치기로 윗집의 항복을 받고 싶었지만, 와이프의 만류에 마음을 삭이고 그날 오후에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했다. 물론 평소 오함마 같은 발망치 소리, 가구를 질질 끄는 듯한 쇳소리의 층간 소음이 있었지만 (와이프는 이 소리에 안방에서 헬스 한다고 했다), 아침에 우리 집을 폭격하는 듯한 샤워 소리 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해 매 아침마다 겪는 소음에 대해 설명했다. 나의 울분 섞인 설명에 관리사무소 직원 분께서 백분 이해하시며 윗집에게 잘 말해보겠다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10분 정도가 흐를 무렵 관리사무소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 저기........제가 906호 집에 전화를 했는데요.....윗집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 자기들은 새벽 5시부터 층간소음 겪고 있다고....."


"예?"


"자기들도 클레임 하고 싶은데 참고 산다고....."


"그러니까, 자기들도 참고 사니까 우리도 참으라는 말인가요? 아니면 자기들이 겪고 있으니까 우리도 당해야 된단 말인 거예요?"


"아 그렇게 말을 한 건 아닌데...."


"아.......하......."


"......."


"예....이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잘못하신 게 아닌데요 뭘. 애시당초 이야기가 안 통하는 사람들이었네요"


"예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 예 괜찮습니다. 괜히 중간에서 선생님께서 고생 많으시네요"


마이클 타이슨이 그랬던가,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가? "누구나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딱 나였다. 적어도 관리사무소에서 전화 오면 미안해하는 제스처라도 취할 줄 알았다. 미안해하며 최대한 조용히 하겠다는 언질만큼은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한 얼얼함이 머리와 내 가슴에서 퍼졌다.


"혜야, 윗집에서......." 내 설명에 와이프 역시 기가 차 했지만, 그녀는 이제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참아보자고 했다.


"쿵~" "쿠쿠쿠쿵~"


"아니 이런 경우를 봤나" 관리사무소에서 전화를 받으면 적어도 며칠 동안은 조용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처참히 깨졌다. 전화 후 근 며칠은 평소보다 더 시끄럽게 울리는 듯했다. 전화 이후 바로 다음 날부터 울린 샤워기 소리에 항의로 위 천장을 툭툭 쳐봤지만, 내 아픈 주먹과는 다르게 샤워기가 욕조를 쥐어박는 소리는 더 청아하게 울렸을 뿐이었다. "에휴 참자. 평소에 얼마나 시달리고 힘들게 살면 저런대?" 그렇게 정확히 이틀을 더 시달렸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어제 밤늦도록 이어진 야근으로 이미 내 심신은 피로했다. 쳐내도 쳐내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며칠 간의 업무로 자고 난 아침임에도 내 체력과 인내력은 지하를 뚫고 있었다. "오빠 어디가!!" 내 와이프의 외침을 뒤로하고 나는 당장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띵동~"


"........."


"띵동 띵동~"


"누구세요?"


"아랫집인데요"


"철컥" 문이 열렸다. 검은 머리와 희끗희긋 나 있는 흰 머리카락들이 막 씻고 나온 것을 자랑하듯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실 엘리베이터에서 두 번 정도 봐서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그때 사실 층간 소음에 대해서 말을 할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가족 4명이 다 타고 있어 소위 다구리를 맞지 않을까 걱정돼 말을 아꼈었던 것뿐이었다.


"아침부터 뭐요"


"저기 얼마 전에 관리사무소 통해서도 전화를 드렸고...아침에 샤워하실 때 샤워기 좀 조심히 놔달라고 요청을...."


"아니 내가 무슨 샤워기를 그렇게 세게 놓는다고 그래요? 그리고 시끄러우면 관리사무소 통해서 연락할 거지 어디서 남의 집에 아침부터 찾아와서 난리야 난리가!"


그의 밑도 끝도 없는 호통에 어이를 상실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 "어떻게 잘 말씀드려 보지" 했던 나의 조심성은 이내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아니 제가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조심히 해달라는건데 왜 화를 내십니까? 그리고...당신 나 알아? 왜 반말이야 반말이!"


윗집 아저씨의 얼굴이 별안간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내 눈앞에서 별이 펼쳐졌다.


"퍽"

"아니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어린 노무 새끼가 뭐?"


불의의 일격을 당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형이 이럴 때 맞고만 있으라고 학창 시절에 나를 두들겨 팼던 게 아니었다. 가뜩이나 눈두덩이를 맞은 탓에 내 이성 역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나는 바로 양손으로 아저씨의 두 허벅지를 잡고 어깨를 아저씨 배로 집어넣으며 돌진했고 윗집 아저씨는 그대로 현관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쿵" 샤워기가 욕조에 떨어지며 내는 소리를 그대로 뒤통수가 거실 바닥에 부딪히며 내었고, 눈이 뒤집힌 나는 아저씨가 기절한지도 모른 채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퍽"

"내가 이 새끼야"

"퍽"

"그냥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

"퍽"

"왜 때려"

"퍽"

"왜 때려 이 새끼야!!!"

"퍽" "퍽" "퍽" .......


"꺄아!"


한참 동안 주먹을 내지르던 나는 안방에서 겁에 질린 채 소리를 지르는 윗집 아주머니의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고, 내 시야에는 거품과 함께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헉....헉....헉....아니 저는....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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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뭐해? 빨리 출근해야지 늦었어!"


"응?" 출근 준비를 하다가 소파에 앉아 짜릿한 상상을 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 정신을 깼다.


"어휴, 저 윗집 클레임 좀 다시 넣어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진짜 가서 혼내주고 싶네!"


"어 그러게, 오늘도 심하시네....알았어 내가 오늘도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볼게. 얼른 가자" 나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도파민 넘치는 38번째 정의구현은 폭행치사로 막을 내렸지만, 39번째는 동네 아주머니들 모아서 손가락질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PS. 폭행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될 수 없으며, 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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