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항상 나를 "일베야~"라고 부르셨다.

주말 에피소드 2. 해서는 안될 가족 간 정치 이야기

by 한민재

"신념은 믿을 신(信)에 생각 념(念)으로, 말 그대로 생각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뜻한다. 현대인은 이러한 신념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처해진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사유체계다. 이것은 세계관으로 작동하며, 세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ㆍㆍㆍㆍ그래서 모든 신념은 언제나 태생적인 한계를 갖게 된다. 이 한계는 크게 세 가지 특성을 나눌 수 있는데 임의성, 제한성, 맹목성이 그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26p-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정치 이야기였다. "계엄은 내란이야. 내란은 사형이고. 그걸 얘기하는데 항상 이재명 타령하거든. 개돼지들이 따로 없다" 삼촌은 매 명절 그래오셨듯 핏줄을 높여 당신의 주장을 했고, 나는 나대로 감히 언성을 높였다. "아니 내가 사람들이 법원으로 침입해서 폭행을 한 게 잘했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의회에 침입해서 전과 기록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관대한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꾸 좌편향 사람들을 보고 내로남불 이야기 하는 거예요"


헤겔이었던가? 정반합을 주장했던 사람이. 헤겔의 수세기를 관통한 논리도 한낱 촌 사람들의 날 선 정치 논쟁에는 적용될 수 없는 케케묵은 이론이었다. 15년 간 그러했듯, 수 시간 이어진 대화에서 결국 진척이란 것은 없고 상한 것은 우리의 감정과 시간이었다.


"왜 곧이곧대로 안 받아들이고 자꾸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에잇 씨, 차라리 그 시간에 차를 타고 부모님 모시고 드라이브를 갔으면 하얗게 눈 덮인 녹음이라도 더 봤을 텐데 젠장." 감정과 울분 섞인 시간을 뒤로하고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올랐다. 논밭과 판넬이 뒤범벅 돼 있는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책이나 읽어보자 해서 펴본 밀리의 서재에 내가 좋아하는 '지대넓얇'의 신판 '무한'시리즈가 올라와 있었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읽다가 설 연휴 내내 열뻗힘에 갇혀 있던 내 가슴을 관통하는 글귀를 발견했다. '신념'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모든 신념은 언제나 역사적이고 시대적이며 지정학적이고 문화적이라는 점이다. 즉, 신념은 ①임의적이다." "신념은 임의적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제한적인 체계, 울타리 안에서만 무모순적인 ②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신념을 주입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집단과 사람에 끊임없이 노출됨으로써 ③맹목성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라는 문구였다. 이 타이밍에 이 문구가?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상쾌함과 스스로의 못남을 그대로 직면했을 때의 창피함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하나님이 부처님이 "예끼 이놈아! 이거나 읽어봐라"하는 느낌이랄까?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의 화두는 '분열'이다. 좌우, 남녀, 노소 가릴 것도 없이 서로 Speak에만 집중을 하고 Listen은 없다. 서로 잘났지만 서로 못나 대치 중이다. TV를 틀면 싸우느라 난리고 유튜브를 틀면 서로의 의견이 맞다고 아우성이다. 피로감이 수시로 찾아와 휴대폰을 살포시 내려놓게 된다.

나라고 이 원죄에서 자유로운가? 내 신념은 그렇게 올곧아서 가족들에게 박박 대들었고, 내 생각은 그렇게도 '절대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당신은 아예 글러 먹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문구를 읽으며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이념 또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아닌 '임의적이고 한계를 가진' 신념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동안 창가를 보며 손들고 벽보는 심정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신념에 대한 채사장(지대넓얇 작가)의 이야기는 요즘 시대를 아우르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주장과 생각이 존귀한 만큼 '상대'의 의견 역시 존중되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은 "우리의 생각은 맞고 너희들의 생각을 틀려!"가 익숙하고, 생각이 맞는 우리는 '우리'로 남고, 다른 이들은 '남'이 되어 배척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 역시 임의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선조들이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채택하신 이유와 선견지명이 있으리.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민주열사들이, 현실에 부딪혀 울분을 삭이면서도 지향했던 대한민국이 있으리. 그 초심을 잊지 말고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대한민국으로 앞서 가도록 해야 하겠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나부터 다스리는 내가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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