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에피소드 1 - 그리운 가족, 엄마
"엄마 벌써 내려가?" 눈을 부비면서 물으면 항상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벌써 일어났나? 더 자라"
여름이 싫었다.
부모님은 25년 정도 주유소를 하셨다. 도심에서는 24시간 혹은 제시간에 문을 열면 되지만, 단골손님 비율이 꽤나 높은 촌에서는 장사가 조금 다르다. 정해진 개점 시간 외에도 "꼬끼오~" 닭 울음소리에 헐레벌떡 밭일을 나가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바이오리듬도 함께 고려된다. 그래서 항상 해가 뜨기 전부터 영업 준비를 하셔야만 했고, 여름은 특히 엄마의 기상 시간을 지독시리만치 앞당겼다. "어서오세요~" 고객 분들에게 외치는 엄마의 다정한 인사말은, 여름에는 나에게 제야의 종소리였다. 그렇게 부지런한 햇빛이 안 미울 수가 없었다.
겨울은 더 싫었다.
우리 어무이는 피부가 약했다. 주유소는 셀프가 아닌 이상에야 항상 기름을 묻히고, 씻고, 다시 기름을 묻히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렇게 수십 년, 조금씩 건조해지는 피부 사이로 겨울의 한기가 덮쳐 오노라면 손이 트고, 갈라지고, 피가 나오곤 했다. 여장부였던 우리 엄마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곤 했지만, 가끔 씻으실 때 갈라진 곳이 따가워 물에서 손을 급히 빼시곤 했다.
20살 대학교를 입학하며 독립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딱 2번을 울었다. (영화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우는 것은 운다고 표현하지 않고 '질질 짠다'고 말한다) 처음이 군대에서였는데 일병 때였나? 철책 순찰을 돌고 오랜만에 집으로 전화를 드렸는데 딱 우리 어무이가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 나야 민재! 잘 지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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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나 소설을 보다 보면 너무나 큰 충격에 특정 사건이나 일이 기억나지 않을 경우가 있다. 나한테는 그날의 대화가 그랬다. 어무이가 사업 때문에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병원에 가신다는 것, 한참을 말없이 대꾸하던 내가 소초 밖으로 뛰쳐나가서 한없이 울고 왔다는 것 외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슨 대화였었지? 15년이 지나서 기억이 안나는 걸까?"라고 하기에는 1년 전에도 되물었고, 10년 전에도 그렇게 스스로 생각했다. 그저, 그날의 대화는 마치 급하게 지우다 찢어진 공책처럼 기억의 흔적은 희미한 채로 슬픈 감정만 아려 욱신거릴 뿐이다.
명절만 되면 기분이 좋다. 쉬는 것도 좋지만 우리 가족들, 특히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좋다. 감정 표현이 서툰 아들이라 표현은 잔뜩 못하겠지만, 당신에게 나의 귀향이 잠깐이나마의 기쁨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형을 위해 거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만큼 행복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