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도 한낱 몇 글자에 미치지 못한다

퇴근길 에피소드 1.

by 한민재

"이런 우라질놈의 자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나 씩씩댔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간혹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남을 비웃어야 자기가 돋보이는 줄 아는, 남 위에 있어야 자기가 빛나는 줄 아는 그런 사람. 오늘의 나는 그러한 뒤떨어진 사람들의 소잿거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퇴근했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던 며칠을 뒤로 하고, 하늘을 가득 채웠던 맑은 공기는 결코 위로가 되질 못했다. "집에서 글을 쓰면서 아주 너를 처참히 짓밟는 그런 세계를 창조하겠어. 너는 그저 내 발 밑에 깔려서 살려달라고 허우둥치겠지. 그렇게 너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치욕을 맛보면서 평생 내 글에 묻혀 빠져 나오지 못할거야"


그렇게 내 상상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욕지껄이와 치욕을 안겨줄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우라질 놈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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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철학자가 그랬던가?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 나의 언어 체계는 폭발하는 내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글로 그 자식의 3대를 멸하고 능지처참하려던 내 감정은 마치 물 만난 불처럼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마냥 차분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언어의 한계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몇 글자 글로도 답답함에 가라앉는 게 우리 감정인 것이다.


사람들과의 어울림으로 만들어 내는 '사회생활' 이라는 이야기가 참 녹록치 않다.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해 벅차게 만들 때도 있고 가진 것보다 덜 드러나게 하여 참 애닳게 만드는 게 사회 생활이다. 이 뿐이랴? 희노애락 그 모든 것이 얽혀 멘탈이 약한 우리의 '감정'이 칼춤 추게 만드는 데에는 참으로 도사인 것이다. 그 감정의 칼춤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웃픈 스토리를 자아냈는가? 얼마나 많은 이불킥을 하게 만들어 우리의 축구 실력을 향상 시켰던가?


감정이 요동칠 때 글을 써보자. 생각보다 감정은 깊지 않고 우리의 언어는 한없이 촌스럽고 짧다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면 감정이 갈무리가 되고 가슴 속 심연 깊숙히 가라앉는다. 언젠가 수면 위로 이 감정이 떠오를 때면, 그때는 한없이 녹슬어 볼품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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