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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낑깡 Feb 22. 2022

죽음을 상상하는 몫

이소라의 Track.9을 듣고


죽음을 상상하는 몫

w. 낑깡



  내가 기억하는 나는 늘 불안했다. 학교에서 하는 간단한 심리상담도 늘 불안이 심하게 도드라진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정신의 영역은 늘 소외받기 마련이었다. 나조차도 나를 방치하며 지냈다. 그러기를 내내 반복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우울과 불안은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서울에 혼자 살게 된 이후로, 그 증상은 더 심해졌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점을 찍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를 해치기 시작했다. 나를 해치고 괴롭히고, 그것으로 삶의 위안을 얻었다. 처음에는 잠깐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였던 것이 점점 나를 죽이기 위한 행위로 바뀌어갔을 때, 혼자 숨죽여 생각했다. 이대로 살면 안되겠다고. 죽을거면 죽어버리고, 살거면 이렇게는 살지 말자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죽음을 선택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죽음을 실패한 자에게 남은 것은 딱 하나였다. 행복하게 사는 것.


  나는 병원을 찾았다. 몇 번의 상담 끝에 맞는 병원을 찾았고, 닥터는 나에게 혼합형 우울 및 불안 장애라는 진단을 남겼다. 그 이후로도 나는 자주 병원에 가지 않았고, 때때로 내 자신을 해쳤으며, 꼬박을 우울해했다. 수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누군가를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떠나보냈고, 아파했고, 행복했고 때론 불행했다. 가장 죽고 싶은 사람이 살고 싶은 사람임을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사람은 아프지 않는 방향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죽고 싶은게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은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나만 행복한 게 죄인 것 같았고, 나는 불행해 마땅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허구의 '나'로 하여금 나는 나를 자꾸만 갉아먹었다. 울지도, 자지도 못하고 멍하니 누워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때, 나는 이렇게 살아있지 않겠다고 행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는 병원에 꼬박 꼬박 갔고 약을 잘 먹었고 일단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하나씩 하나씩 어렵지만 실천해가려고 한다. 힘껏 사랑하고, 힘껏 미워하는 쪽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울할 때면 이소라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내 자신이 싫고 미워서, 살아있는게 괘씸해서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는 못버틸 것 같을 때면, Track.9을 찾아 들었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나의 불행이, 평범하다는 말로 납작해지고 압축될 때, 나는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어머니를 보며 나는, 죽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누군가에게 영영 상처로 남는지를 배웠다.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죽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아니, 죽는 것은 모두에게 두렵다. 하지만 살아있음이 더 두렵기에 내가 생각하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다. 태어나는 것에 이유가 없었듯, 살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때론 정의하지 않는 것이 더 강할 때가 있다.


  그 어떤 말도 흔들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다. 가까운 사람의 말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의 길고 긴 생각보다, 가끔은 나를 알지도 못하는 가수가 전해주는 노래 가사 한 줄이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나는 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나' 하나를 바꿀 순 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의미를 두는 삶을 살기를. 당신은 나를 모른다고 울었던 나날이 지나고 스스로 건강해질 날이 오기를. 이제의 나는, 주변 지인이 힘이 들어하는 것 같다면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준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을 깨달을 때까지. 나는 그 때까지 옆에서 도와줄 수 있겠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알기에. 오롯히 당신의 몫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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