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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27. 2023

앙(仰) 이목구심서 28

한 시간의 가치


한 시간의 가치


마을은 가랑비를 맞아 거북이처럼 넙죽 엎드렸다.

시멘트로 포장한 듯한 잿빛 구름도 태양삼켜버렸다.

늘이 눈곱 같은 구름 떼어내지 못하여 풍경은 아스라이 박무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날은 책 읽기에 딱이다.

유튜브에 빠져 오전을 허우적거리다가 다 까먹고, 오후부터는 책상에 앉아 물고기처럼 부유하는 자를 잡느라 씨름하있다.

내게는 세상적인 욕심도 있지만 독서에 대한 욕심도 만만찮다.

흐릿한 정신을 일깨우고 포만감을 주는 시간이어서 좋다.

결과물이 보이는 생산적인 활동은 니지만 독서로 보낸 시간은 전혀 아까울 게 없다.


자는 망막을 뚫고 들어와 혈액처럼 흐르다가 세포 속 간을 찾아 차곡차곡 쌓인다.

거기서 몸을 키우고 살을 찌운다.

그러다 어느 날 글자는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거나 펜을 도구로 삼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뱉어낸 언어를 방바닥에 펼쳐놓으면 하나같이 기시감이 들 것이다.

이는 들이 예전에 읽은 책에서 흘러몸의 세포 있었것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은 유수와 같다.

어느새 네 시다.

갑작스럽게 아내가 방문을 연다.

"빵을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싶은데~~"

나는 계속 책을 붙잡고 싶어 대답을 미룬다.

그러나 얼마 후에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어내었다.

아내와 마트에 가 부재료를 사고, 파리바케트에 들러 빵도 구입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시간이 참 아까왔다.

책을 계속 읽었으면 몇십 페이지를 더 읽어갔을 시간이었다.

고작 빵 몇 개와 야채를 사느라 시간을 낭비해 버리다니.

괜스레 지나버린 시간이 못내 안타까워졌다.


그러나 시간의 가치로 따져보면 독서와 장보기 중에 어느 까.

나 자신은 책을 보는 쪽으로 저울이 기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가족이 있는 몸이다.

책은 나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장보기는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를 위한 일이므로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다.

더구나 아내와 함께 하는 한 시간은 삶의 한 부분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어서 더욱 특별하다.


가족을 위한 일은 언제나 옳다.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한다.


지금 아내는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다.

자기를 위해서 사용해도 부족할 것을 가족 모두를 위해 자기 고유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는 아름답고 위대하다, 책 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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