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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22. 2023

앙(仰) 이목구심서 27

이 달팽이의 이름은 '달동이'입니다

이 달팽이의 이름은 '달동이'입니다



이른 아침 텃밭에 내 발걸음 소리 들려주다가 보았습니다.

동그란 짐을 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달팽이를요.

더듬이를 움직이며 몸을 밀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느릿느릿해서 땅이 몸을 잡아당겨 움츠러들고 싶어 할 정도입니다.

시간도 그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동동거립니다.


서녘 먼 산이 어둡고 뿌옇게 보이는 게 비가 내리나 봅니다.

날이 흐렸습니다.

근데 이 아침에 달팽이는 짐을 등에 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가는 길은 뻔합니다.

'니가 가면 어디겠어? 이 작은 텃밭이 너의 세상인걸!'

하고 그의 앞길을 단정합니다.


이렇게 오분정도 지났을까요.

20센티 정도 전진했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건가?'

하늘의 먹구름들이 가까이 다가와 주위는 해거름처럼 회색빛으로 변했습니다.

바람도 써늘합니다.

달팽이는 여전히 가고 있습니다.

손으로 집어 들어서 풀숲에 놓아줄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간인 내가 개입을 한다면 그는 무척 놀랄 것입니다.

어쩌면 엄청난 공포로 인해 다시는 길을 떠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또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시간과 꿈이 헛된 것이 될 뿐입니다.

갑작스런 변화에 지금까지 내가 뭘 했지 하며 주저앉아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행을 바라면서 다음에도 누군가가 자기를 들어 더 좋은 풀밭에 놓아주기를 기다리기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팽이를 건드리면 안 됩니다.

안타깝고 답답해도 그냥 지켜보아야 합니다.

달팽이에겐 달팽이만의 고유한 삶이 있으니까요.


막내가 학교에 가는데 차를 태워달라고 다가옵니다.

나는 더 달팽이를 지켜보고 싶었지만 일어납니다.

배웅하는 아내에게


"여기 달팽이가 있어"


라는 말을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나 대신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요.

 "어서 가요. 늦어요"

라는 대답만이 호기심에 들뜬 내 마음을 찌르듯이 들어왔다 나갑니다.

운전하는 내내 달팽이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만남도 인연이라 달팽이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졌습니다. 

달팽이니까 '달동이', '달순이?'

결국 '달동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달동이는 혈혈단신으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곧 비바람이 들이닥칠 겁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어보고도 싶지만 그의 언어를 배우지 못해 묻지를 못합니다.


30여분 후 차에서 내리자마자 텃밭을 확인합니다.

'달동아~'

그런데 어디에 있나요.

근처를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시야를 넓혀 1미터 근방을 봅니다.

다시 2미터로 범위를 넓힙니다.

'없네~~'

그새 멀리 텃밭 밖으로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달동이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지나온 자리엔 흰 물감으로 그린 지도처럼 땅바닥에 발자국이 나 있습니다.

그 흰 줄에 눈길을 주고 꼬불꼬불 따라갑니다.

'달동아, 너 어디 있냐?'

달동이의 숙소

그리고,


드디어 찾았습니다.

반갑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처음 본 곳에서 한 걸음 정도 되는 그리 멀지 않은 풀 사이입니다.

한 장의  나뭇잎 아래.

이곳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네요.

'여기서 오늘 비바람을 피하려는구나. 이 와사가 너의 안식처로구나.'

달동이는 꿈쩍도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아마 잠이 들었나 봅니다.

밤새 길 떠나온 몸을 어 쉬고 있습니다.

어떤 고단한 하루가 잠이 들었습니다.

달동이가 꾸는 꿈은 어떤 꿈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에게도 희망이 있겠지요.

역시나 아픔도 있었겠지요.


'잘 자라 달동아, 좋은 꿈 꾸고 내일 또 만나자.'


달동이 곁에는 씀바귀꽃 여럿이 몸을 흔들며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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