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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17. 2023

앙(仰) 이목구심서 26

"햇볕이 곧 유료서비스로 전환됩니다"

"햇볕이 곧 유료서비스로 전환됩니다"



잠시 일을 멈추고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게 유료화되는 세상을.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 공짜로 주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볕, 마당에 핀 금붓꽃.

모두가 그냥 바라보고 맛보고 느끼면 되었다.

원하는 대로 필요한 만큼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각자가 마음껏 가슴에 넣고 품을 수 있었다.

여기엔 시간 제약도, 수량의 제약도 누구의 제재도 없이 자유롭고 공평하게 제공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내 것인 줄로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대로 사용하고 마구 버려도 되는 줄 알았다.

하늘이 내게 준 권리로 알고 남들보다 적게 받거나 소외되면 앞장서서 외쳐왔다.

“일조권, 조망권을 보상하라!”

자연이 주는 대부분의 것이 내 소유고, 우리의 권리이며, 내 나라만의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자연이 비용청구를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부에서는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만 선물처럼 거저 내어주던 것들을 이제는 제 값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점차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치료비를 요구하고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한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지금은 깨끗한 물을 마시고 공기를 마시는 데도 돈이 든다.

이대로라면 얼마 후엔 바람에도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정원의 장미를 보려 해도 만 원어치만 보아야 하고 좀 더 보려면 추가로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마치 동전을 넣고 통화하던 80년대의 공중전화처럼 제한된 시간에 우리 몸을 맞추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가뭄에 단비, 가을 단풍, 오월의 신록, 겨울날의 함박눈, 아침 새들의 지저귐조차도 더 이상 무료가 아니게 된다.

지금의 물처럼 비용을 지불한 만큼만 허용된다.

월말의 통장엔 햇볕과 바람과 비, 사계절 풍경 관람료가 출금되어 있을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등을 돌리며 멀어져 가고 있다.

우리 인간을 향한 따뜻하고 포용적인 시선이 차갑게 식어간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예상밖의 재해를 통해 커가는 두려움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아니, 내가 가해자이다.

나는 우리라는 집단의 방패 뒤에 숨고 싶지 않다.

편리와 쉬움, 몸의 욕망에 따른 행동으로 자연을 목 졸라 왔다.

자연의 환대에 당연함으로 권력자처럼 누리려 했다.

자연의 침묵에 멸시와 무시로 대꾸했다.

마구 짓밟아도 되었다.

침을 뱉어도 되었다.

성장과 예술의 이름으로 파헤치고 부수었다.

동의 없이 함부로 금을 긋고 사고팔았다.

인류는 급기야 자연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누가 그래도 된다고 하였던가.

어떤 자연이 네 마음대로 하라 맡겼던가.

자연은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다.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잊고 자해를 일삼고 있다.


나는 거창하게 전지구적 차원의 처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목소리는 작고 힘이 없어 해결은 요원하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럼에도 지금 나로부터 시작하련다.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지만 모든 것은 하나에서부터다.

만리장성도 벽돌 한 장으로 시작됐다.

시작이 변화의 팔 할을 차지한다.

더 늦기 전에 주위의 것들에 감사하자.


너무 흔해서 잊고사는 존재들에 눈길을 주고 바라보자.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칭개와 엉겅퀴를 부르지 못하기에 나와 상관없는 타자가 되고 관심 밖이 되는 것이다.

알지 못하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후회하기 전에 아끼고 쓰다듬어주고 이름 불러주자.

단순하여 투박해 보여도, 좀 느리고 불편해도 자연과 대화하며 걸어가자.


|일회용 컵을 쓰지 않도록 하겠다.

|걷는 길의 휴지를 외면 않고 집어 들겠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과, 아들의 아들과, 아들의 아들의 아들도 조건 없이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를 마음껏 누리게 되기를 소망한다.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햇볕이 무료서비스를 연장하였습니다"

붓꽃들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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