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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14. 2023

앙(仰) 이목구심서 25

오월이 어머니다.

오월이 어머니다.


아베 마리아를 듣고 있습니다.

싱그러운 오월에 어울리는 클래식 중에 이 곡 만한 게 있을까 싶어요.

구노와 슈베르트와 카치니를 말입니다.

피아노와 첼로의 가늘고 부드러운 선율은 마음의  정원을 휘저으며 걸음마다 애련함을 풀어 놓습니다.

이 음의 파동은 곧이어 나날이 깊어가는 감나무 이파리에 부딪치며 출렁입니다.

연둣빛 이파리는 낮게 드리운 하늘가에서 춤을 추며 한낮의 파티를 즐깁니다.


평상시엔 성악곡이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찾아 듣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올라와 있기에 선택하였습니다.

아니, '구노'가 나를 지목하였고 나는 기꺼이 그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즐겁고 기분 좋은 구속입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세상이 깨끗해졌습니다.

맑게 정화된 산과 나무가 선명합니다.

가끔씩 점잖게 불어오는 바람에 갓 태어난 산소가 몸을 통과해 나갑니다.

나의 영혼은 투명하고 따뜻해집니다.


온갖 싹 틔운 생명들이 정말이지 열심히 몸을 만들어가는 오월입니다.

햇볕과 바람과 땅이 머리를 맞대고 뜻을 모아 나무를 키워내는 중입니다.

하늘은 모유처럼 비를 내려 만물을 배부르게 먹여주었습니다.

오월 녹음의 풍요로움은 가을 들판처럼 충만함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우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이름, 엄마 어머니입니다.

세상을 품은 오월은 또 한 분의 어머니입니다.

이 넓은 세상을 품에 안고 양육하고 있습니다.


오월이 없다면 생명은 기형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콩나물처럼 웃자라거나 크기가 작아 열매 또한 볼품없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풀과 나무와 사람이 오월의 아들딸입니다.

산과 강과 바위가 한 태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오월의 정수리에 와 있는 오늘, 아베 마리아를 듣습니다.

풍요로운 계절의 보살핌과 거저 얻게 되는 선물 같은 을 체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을 대변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숨 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찬가이자 응원가입니다.


비록 음악이 얼마 후 멈춘다 해도 음의 진동은 영원히 재생될 것입니다.

물결치듯 선율은 밝은 곳이나 그늘진 곳, 감춰져 보이지 않는 곳에도 다가가 머물 것입니다.

마치 오랜 가뭄에 텅 빈 호수를 채워가는 강물처럼 낮은 곳, 더러운 곳, 아픈 곳 가리지 않고 연둣빛 소리로 허공을 채워갈겁니다.

낮게 파도치는 바람은 어쩌면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입니다.

아이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조심스러운 어머니의 눈빛입니다.


오월은 만물을 키우는 어머니입니다.


https://youtu.be/LrFOoMM2J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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