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재 May 10. 2023

앙(仰) 이목구심서 24

고독이 열매다

고독이 열매다


나무만큼 외로운 이가 또 있을까요.

사람처럼 나무도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하늘 아래 똑같은 나무는 없지요.

한 나무에도 잎이나 가지, 뿌리가 제각각입니다.

스치는 바람이나 햇살의 손길도 각자가 다른 농도로 체감합니다.

나무는 삶을 오로지 홀로 감당하며 서 있습니다.

비켜 서거나 숨을 곳이 따로 없습니다.

무섭거나 도망가고 싶을 때가 없었을까요.

돌이킬 수 없어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비바람과 깊은 어둠의 절대 고독 앞에 서 있습니다.

결전을 앞둔 장군의 마음처럼 외롭습니다.

비록 새들이 찾아와 고운 목소리로 위로한다 하여도 바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가지가 흔들리면 새는 날아가 버립니다.

다시 혼자 남겨진 나무는 그저 입술을 지그시 물고 참아냅니다.

모든 폭력은 수명이 짧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나무의 열매는 외로움의 산물입니다.

고독이 열매를 낳았지요.

가지에 다닥다닥 달린 살구는 외로움의 총량입니다.

탐스럽고 향기로운 열매는 고독의 깊이입니다.

외로움의 크기만큼 열매는 성장합니다.

고독의 뿌리가 깊을수록 상품(上品)이 됩니다.


살구나무는 하루하루 성장합니다.

얇던 잎은 더욱 짙어가고 열매는 부풀어 오릅니다.

침묵 가운데 완성을 향해 가느라 분주합니다.

그의 고요함은 나태함이나 무능이 아닙니다.

분망에서 오는 만족이고 최선에서 오는 느림입니다.

어둡고 습한 뿌리 끝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동시에 삶을 채워갑니다.


푸르른 생명력이 방울방울져 흘러내리는 살구나무 아래에서 그가 하는 말을 전합니다.


지금 외로운 이여, 기뻐하십시오.
외로운 만큼 열매는 크고 달답니다.
언제든지 찾아오면 꼭 붙잡으십시오.
외로움을 친구 삼으십시오.
  



매거진의 이전글 앙(仰) 이목구심서 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