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재 Jul 05. 2023

들어가며

성심원에 삽니다

들어가며 


         

삶 하나,     


  성심원 어르신들의 시집 『장단 없어도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중에서 안병채 할머니의 <성심원에 오는 날> 일부를 아래에 발췌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고등학교를 다닐 만큼 유복한 집안에 살았습니다. 스무 살에 결혼을 하였고 딸과 아들을 낳아 기르다가 스물넷에 발병을 하였답니다. 그 후 시댁에서 쫓겨나고 친정집에 와 별당 깊숙한 곳에서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격리 생활을 하였습니다. 젖먹이 아이는 누룽지를 끓여 먹였고 절대 가까이 하지 않았답니다. 조금 자라서는 마당에 서서 서로 말로써 그리움을 전달했답니다. 그런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더 이상 한 집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성심원에 오기로 한 것입니다.


  "1985년 5월 4일, 많이도 울고 탄식도 했답니다. 남 날 때 나도 났겄만 무슨 죄가 이리 많아 부모, 자식, 동기, 친지 다 버리고 듣기도 지긋지긋한 요양원, 세상에서 아무짝에도 못 쓸 병신들이 모인 이곳에서 나도 그 가운데 함께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분하고 서러운 마음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하소연할 곳 없고 아무도 모르게 꾸리는 짐과 마음정리 서러워라. 서러워라.

  무엇이 모자라고 어디가 부족해서 이렇게도 서러운고--- 탄식이 절로 난다. 병도 병도 더러운 병, 원수인 이놈의 나병. 이놈의 병은 무슨 병이 건데 효정(效情)도 도덕도 예의도 다 끊어야 하나? 조석으로 봐도 지루하지 않은 골육애정 버려두고, 나 혼자 외롭게도 도망하다시피 피해 가야만 해야 되나?"



삶 둘,  

   

  주일미사를 마치고 느릿느릿 풍현마트를 나섭니다. 손에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회장님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신자들이 모두 가고 없는 길거리에 그림자 하나 만이 비틀거리며 멀어져 갑니다. 흔들리는 걸음엔 질곡의 삶이 실려있습니다. 외롭고 슬프고 고단했던 삶이 걸어갑니다. 헤어지고 닳아버린 몸이 세상 속으로 헤엄쳐갑니다. 절뚝거리는 영웅입니다.

  비닐봉지엔 막걸리병 하나가 비죽이 머리를 내밀며 따라가고 있고, 안주거리도 함께 있는지 검은 봉지의 배가 올챙이처럼 불룩합니다.

  어르신 또한 한센인이십니다. 성심원 초창기에 와서 역시 같은 병을 앓은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셨습니다. 선비같이 점잖은 분이어서 성심원 성당의 사목회장 직책을 오랫동안 맡고 계십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노인성 치매가 와 총명하던 기억도 사그라지고 자주 깜박깜박합니다.


         

삶 셋,     


  사지육신 멀쩡하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지는 성심원에서 저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만 십 년이 었습니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한센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그 무섭다는 한센인을, 마주 보며 살 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내 아버지요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분입니다. 이곳에서도 웃음과 배려와 믿음이, 때로는 오해와 아픔이 뒤섞여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기처럼 어느 날 찾아온 나균으로 인해 어르신의 삶은 철저히 은폐되고 지워졌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의 영웅적인 삶의 궤적을 망각에서 건져내야 할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기록된 것만이 살아남고 역사가 될 것입니다. 성심원 안에서 피고 지는 희로애락의 크고 작은 꽃들에 주목하겠습니다. 빛과 생명은 감춰둘 게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야 합니다. 슬픔과 아픔 또한 햇볕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는 빛으로 치유가 되며, 어떤 이들은 이 상처를 보고 삶에 커다란 위로와 희망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청 성심원 축제에 초대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