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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22. 2023

앙(仰) 이목구심서 9

'떨어지는' 꽃잎이 아름다워

마당의 수돗가에 앉아 봄나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때 시원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살구 꽃잎이 마구 흩날립니다.

마당에도, 내 몸에도, 대야에도 날개를 접은 꽃잎이 소리 없이 내려앉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 첫 꽃망울을 터뜨리고 온 세상에 꽃과 향기로 광휘를 떨치던 그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마음을 설레게 하던 꽃이었습니다.

이제 살구꽃의 봄날은 지나갔군요.

그들의 영광이 한낱 바람에 날려 바닥을 뒹굽니다.

그러나 지는 꽃잎은 쓸쓸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함박눈처럼 날리는 꽃잎 아래에서 나는 옛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합니다.

때론 화동의 꽃세례를 받는 예식장의 신랑처럼 미소가 귓가에 걸립니다.

바닥에 다소곳이 누운 꽃잎을 한동안 바라봅니다.

한때는 환호와 경탄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떨어져 발밑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곧 모두에게 잊힐 것입니다.

모든 떨어지는 존재는 아름답습니다.

그가 꽃이든, 사람이든, 열매든.


사람도 꽃처럼 떨어집니다.

붙박이별도 떨어지고, 묶인 게 없는 솔개도 떨어집니다.

이들이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결국 떨어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영광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감동은 얼마 되지 않아 지루해집니다.


꽃이라고 떨어지고 싶겠습니까.

높은 자리에서 추락하여 잊히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꽃은 미련 없이 바람에 몸을 맡깁니다.

더럽고 어두운 바닥이라도 가리지 않고 추락합니다.

이처럼 때를 알고 자연에 순응하기에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꽃의 화양연화를 포기한 그 비극적인 낙화에서 또 다른 미를 봅니다.

슬픔이 성스런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순간입니다.

해 질 녘 저녁노을의 황홀함을 보며 감탄합니다.

별도 때가 되면 가장 화려하고 가장 밝은 빛을 내며 사라집니다.

나의 삶이 어느 날 바람 없이도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완강히 고집을 부리지나 않을지 걱정됩니다.

바라건대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살구나무의 낙화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웠으면 합니다.

용감하게 새로운 삶(죽음)을 선택한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땅에 떨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꽃잎이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아직은 따뜻한 등을 하나하나 토닥여 주고 싶은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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