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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23. 2023

앙(仰) 이목구심서 10

봄비, 봄비가 내려요

하늘이 축복하듯 메마른 땅에 비가 내려요.

느릿느릿 걷는 계절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요.

대지는 입을 벌려 달콤한 빗물을 마셔요.

허기진 배를 채우듯 흙의 빈 위장에 봄이 차오르네요.


봄이 비를 들이켜는 소리 들어보세요.

푸석푸석한 얼굴을 씻는 잎을 바라보아요.

싱싱하고 뚜렷해진 벚꽃을 눈에 담아두어요.

기지개를 켜던 나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고 있어요.

고사리 같은 단풍나무 이파리가 꼼지락거려요.

꿈쩍도 않던 은행나무가 흔들리고 있어요.

푸른 새싹이 어서 나가자고 안에서 대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온 산의 나무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들리나요.

기쁨과 반가움과 희망이 어우러진 감탄사들이 공중에서 춤추고 있네요.

운동장의 마른 잔디 아래에선 푸른 잎이 고개를 내밀었어요.

땅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소란에 견딜 수가 없었던 걸까요.

빗물이 나가라고 등 떠미니 잔디도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이미 고개를 내밀었던 마당의 쑥과 민들레는 목을 더 늘리고 있어요.

궁금함이 더 많아진 거지요.

봄을 좀 더 만져보고 싶은 거예요.

봄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어요.

일부러 비를 맞는 사람은 없다지만 느티나무는 오롯이 젖어 미끈한 허리를 뽐내고 있지요.

강가의 바위도 어느새 속살까지 젖어 그 몸집을 더 크게 불리고 있어요.

사람이지만 한 그루 걷는 나무인 나는 봄비에도 서있지 못하고 몸을 감추고 말지요.

그러나 내게도 빗물이 들이쳤으면 좋겠어요.

겉옷이 젖고 속옷도 젖어 각질처럼 말라붙은 먼지를 벗겨냈으면 해요.

게으르고 부정한 마음의 세간살이들 몽땅 꺼내어 빗물에 치대었다가 첫 햇볕에 널어 말렸으면 좋겠어요.

쏟아지는 빗속에 서서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끗하게 씻고 싶어요.

그러면 나무처럼 새순이 돋고 옆구리에 꽃봉오리가 맺힐 거예요.

잎사귀 무성해지면 물까치도 사슴벌레도 찾아오겠지요.

어쩌면 가슴 뛰게 하는 그녀가 잠시 햇살을 피해 찾아들지도...


만물을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하는 비여, 내게로 와 나의 옷을 적셔다오.

맑고 순수한 봄나무가 되고 싶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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