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재 May 05. 2024

오월은 축제 중

앙(仰) 이목구심서Ⅱ-39

오월 초는 흰꽃의 축제장이다.

산마다 아카시꽃, 도롯가의 이팝, 장독대 옆의 불두화, 덤불 속의 찔레꽃이 한창이다.

밤근무 후라 봄날의 찬란한 낮을 잠으로 채웠다.

눈을 뜨니 시계는 오후 네 시를 건너간다.

잠을 잤는데도 머리가 무겁다.

멍하니 앉아있다 밖에 나오니 햇볕이 여전히 마당을 쓸고 있다.

오월은 사위를 온통 초록으로 색칠하고 산과 들의 경계를 지우기에 열중이다.

슬리퍼를 신은 채로 산길을 따라 걷는다.

오늘밤에도 근무를 해야 하기에 망설이다가 나선 길이다.


얼마 후 아카시 향기가 바람과 함께 달려와 나를 감싼다.

달콤한 꿀에서 나던 향기가 몸을 채운다.

잡내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단내음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은 짙어간다.

나무 아래 그늘을 모아 빨래처럼 비틀어 짜면 꿀이 방울방울 떨어질 것만 같다.


어린 시절처럼 싱싱한 꽃줄기를 손으로 훑어내어 한 움큼 입에 넣는다.

약간의 풋내와 달근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그와함께 추억의 샘에서 꽃이 아련하게 솟아오른다.

함께 뒷동산에 올라 꽃으로 간식 삼아 배를 채우던 동무들,

웃을 때면 나란히 피어난 꽃들처럼 치아가 하얗게 빛나던 여자아이,

성모 마리아께 아카시꽃을 데려와 시를 지어 바치던 십 대의 오월이 불현듯 찾아든다.


이렇게 몇 차례 꽃을 먹었다.

벌이나 나비처럼 꿀만을 골라 먹을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발걸음을 옮기니 무릎높이에 잘디잔 꽃들이 아옹다옹 모여있다.

국수나무 꽃이다.

나무줄기 중심에 국수 같은 심이 들어있어 명명한 이름이란다.

아주 작은 꽃들 여럿이 모여있어 가지 위에 솜뭉치를 군데군데 얹여 놓은 모습이다.

어쩌면 꽃에서 가느다란 국수 면발을 뽑아 올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르막길의 비탈진 덤불 안에는 찔레꽃이 앉아있다.

포물선을 그리며 늘어진 가지마다 꽃을 피워 올렸다.

가시를 감춘 꽃은 하늘을 향해 웃는다.

다섯 장의 꽃잎으로 날개를 단 나비처럼 보인다.

큰 소리로 이들을 놀래키면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가버릴 것이다.

찔레꽃이 필 때면 항상 가물었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올 해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큰꽃으아리다!

해마다 꽃을 보여주었던 산 자락이다.

녹음 속에서 꽃의 흰 자태는 금방 들키고 만다.

반가움에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아리 앞에 선다.

홀로 산그늘을 지키고 있기에 꽃이 대견하다.

실처럼 가느다란 몸이지만 힘이 센 꽃이다.

접시만 한 꽃을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여러 날동안 들고 있다.


길을 나선 지 반 시간만에 강변길에 선다.

아카시꽃이 강을 마주 한채 서로를 보고 있다.

산비탈이나 척박한 땅에 정착한 이들이 생산해 내는

꽃과 향기와 꿀은 어디에서 오는가.

역경과 고난을 참고 이겨내며 흘리는 눈물인가.

배어 나오는 땀인가.

고통이 꿀의 재료라면 나는 꿀을 모으고 있는가.

꽃을 피우고 있는가.

이런 물음들을 하나둘 꺼내보면서 집에 도착한다.


이제 저녁을 먹고 출근해 꿀을 모으러 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나무에 연둣빛 왈츠가 흐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