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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이목구심서
감나무에 연둣빛 왈츠가 흐른다
앙(仰) 이목구심서Ⅱ-38
by
강경재
Apr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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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다.
강을 따라 내려오는 바람이 시원한 오후다.
양쪽 키 큰 전봇대 사이로 음악노트처럼 오선의 줄이 그어져 있고 낮달이 '높은 솔'에 엎드려 졸고 있다.
바람이 손짓할 때마다 콩나물 대가리 같은 감나무 잎이 오선을 오르내린다.
감잎은 하나하나가 음표이다.
이들은 악보 위에서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
연둣빛 감잎 사이에서 푸른 하늘이 출렁인다.
흘러내리는 곡은
'봄의 소리
'
왈츠
가 분명하다.
제비나비 한 쌍이 검은 무도복을 입고 선율에 맞춰 춤을
추다 간다.
고목처럼 검고 낡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연둣빛 잎사귀가 어여쁘다.
아찔한 가지 끝에서 입을 벌려 "삐약삐약"노래하는 햇병아리의 주둥이를 닮았다.
맑은 봄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연노랑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창공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다.
악보에서 음표는 저마다 소리를 가지고 있다.
음표가 길거나 짧거나 마찬가지다.
저 잎사귀도 모양과 크기가 다르지만 각자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 목적 즉,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어느 잎은 왕관을 닮은 꽃을 내놓을 것이고 이어서 감쪽같이 진주알 같은 감을 만들어낼 것이다.
세상엔 수많은 과일들이 있어 제각각의 맛을 내지만
나는 홍시를 제일 좋아한다.
감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를 좋아한다.
나의 유년을 곁에서 지켜온 나무라서 그렇다.
산골에서 자란 내게 유일한 간식거리여서 몸에 감이 박혀 있어서다.
그렇기에
이
봄의 감 잎사귀는 더없이 미쁘고 사랑스럽다.
낮달은 저 높이 오선을 벗어났고 마당엔 그늘이 드리운다.
감이파리 같은 하루가 기울고 있다.
시월 어느 날엔 빨갛게 전등을 켠 채 서 있을 감나무를 노래할 것이다.
오늘로부터 그날이 전봇줄처럼 길게 이어진다.
지금이 시월과 연결되었다.
감나무처럼 잎사귀를 내어놓고 흔들려야지.
그 흔들림이 나만의 노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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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왈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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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에세이를 씁니다. 한센인의 보금자리, 산청 성심원에 살면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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