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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pr 11. 2024

봄바람 처방전

앙(仰) 이목구심서Ⅱ-37

고백하건대 봄바람이 들었다.

며칠 전 벚꽃길을 다녀오고부터다.

정확히 언제,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길에서 만났지 싶다.

그때는 전혀 느낌이 없었으니까.


당일 자정이 지났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는 무겁고 몸이 나른하다.

발산하지 못한 그 어떤 것이 목에서 간질거린다.

가끔 기침을 한다.

그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무기력한 하루를 보냈다.

당최 의욕이 없고 누워있고만 싶다.

근육들이 내 몸을 짓눌러 물먹은 솜 같다.

으스스 춥다.

깔깔이를 걸치고 목에는 목두건을 두른다.

마당에 나가 햇볕아래 앉아보곤 한다.


꽃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눈에 안 들어온다.

갑자기 머나먼 나라의 일처럼 관심 밖이다.

허리가 아픈데도 눕고만 싶다.

입맛도 없어 국에 밥을 말아 후다닥 넘긴다.

환자처럼 기침을 해댄다.

봄바람이 사람을 이렇게 구겨놓았다.


무우가 바람이 들면 어디에 쓸까.

깍두기를 담아도, 뭇국을 끓여도 맛이 없다.

특유의 달큰하고 시원한 맛을 잃는다.

그래서 버려지기 일쑤다.


나 또한 바람이 들었다.

그냥 지나쳐도 좋으련만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바람은 나를 품는다.

작년에도 혼이 났었다.

의료원을 가니 최근 유행하는 바람이란다.

요즘 많은 사람이 봄바람에 며칠씩 취해 있단다.

이렇게 한때의 유행에 동참하다니 참 가벼운 존재다.

깊이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나약한 심지를 가졌다.

눈을 들면 벚나무, 살구나무, 목련이 흐드러지고

발밑에선 제비꽃, 민들레, 무스카리 지천인데

나는 이 계절에 쓰러졌다.

봄바람이 들어 무우처럼 구멍이 송송하다.

그런가.

이 봄에 많은 이들이 그런가.


생각해 보니 꽃은 고통 위에 올려쌓은 탑이다.

나무는 혹한의 겨울 동안 몸 안에서 꽃을 조각해 왔다.

그러다가 봄볕과 동풍이 불자 자기 살을 찢어 창공에 꽃망울을 내놓는다.

어찌 자기 을 열어젖히느라 아프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산고의 고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 생명을 낳는 위대하고 성스러운 출산의 순간이다.

꽃이란 꽃은 모두 인내의 결과물이다.

나무가 고통을 피하려는 본성을 이겨낸 자기 승리의 현현이다.


우리가 꽃을 보고 환호하는 이유다.

먼 지방의 꽃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이유다.

나무의 아픔을 위로하고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꽃의 탄생을 기뻐하기 위해서다.

사실 나무를 위로하러 가지만, 더 많이 위로받는다.

기쁨을 나누러 가지만, 두 배 그 이상으로 기쁨을 받는다.

뒤돌아오는 상춘객의 가슴엔 희열이 가득하다.


한데 나는 꽃의 광채를 입고서 바람이 들었다.

그 후 며칠 동안 다친 고양이처럼 드러누워 야옹, 야옹 거린다.

혹시라도 봄바람은 내게도 꽃이 려는 전조인가.

내일의 웃음을 위해 오늘 흘리게 되는 눈물의 의미인가.

정녕 꽃이 피려는가.

슬프게도 나의 아픔에 자신이 없다.

그나마 이 글이라도 쓰게 되었으니 최후의 위안으로 삼는다.


다행인 휴무일인 이틀바람 들고서 오늘은 출근을 했다.

그런데 이건 웬일인가.

그 심하던 기침이 거의 멈추었다.

허리가 묵직한 게 통증도 있어 엉거주춤 걸었으나 일을 하다 보니 감쪽같이 허리가 펴졌다.

(물론 약을 복용해 왔지만 말이다.)

퇴근길이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했더니

"쉬지 말고 일을 계속해야 할 사람"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그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억울하게도 쉬는 날엔 바닥에서 골골거리다가 일터에선 생기가 돌다니ᆢ.

약 20여  간을 일을 하며 지냈으니 내 몸에 자동적으로 일이 배어버린 것이다.

매일의 루틴이 플라시보가 되었다.


일이, 직장이 봄바람엔 최고의 처방전이다.




) 이미 짐작을 하셨겠지만 "봄바람"은 요즘 유행한다는 "감기(感氣)"를 두고 한 말입니다. 감기는 일종의 기운이니 바람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세상이 아는 봄바람이 아니라는 점 명확히 밝혀둡니다. ㅎㅎ 모두 감기 조심하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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