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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pr 06. 2024

진양호 벚꽃길

앙(仰) 이목구심서Ⅱ-36


원내 둘레길 프로그램이 있어 진양호 벚꽃길에 다.

24인승 카운티에 이용인들과 유의배신부님을 모셨다.

간만의 운전이라 약간의 긴장감과 들뜬 마음에 심호흡을 연거푸한다.

어제 내린 비에 산과 들은 산뜻산뜻하다.

공기도 해맑다.

버스 안에는 때마침 임영웅의 노래 '딱이야'가 흐른다.

'그래, 오늘이 나들이하기엔 딱 좋은 날이로다.'

청동기문화 박물관에 주차를 하고 걷는다.

재갈 같던 마스크도 벗었다.

그새 꽃잎이 하나둘 눈처럼 날리고 있다.

까치도, 참새도, 까마귀도 상춘객이 되어 나무 안에서 수다스럽다.


진양호는 산에 둘러싸여 멈춘 듯 고요하다.

호수 둘레로는 용이 꿈틀거리듯 타원의 도로가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이 도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 꽃이  피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두 줄의 벚꽃 띠가 호수의 목둘레에 두른  은목걸이 같다.

벚꽃은 하나는 지상에, 다른 하나는 호수 아래에 잠겨있다.

꽃은 기차 레일처럼 평행선을 그으며 달려가다가 다리를 만나 뚝 끊어진다.

그러다가  다리를 뛰어넘어 곧바로 다시 꽃띠가 길게 이어진다.


데크를 따라 걷다 보니 물 비린내가 훅 들어온다.

호수의 살냄새다.

이는 호수가 살아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렇기에 벚나무는 수중에도 꽃을 피워 호수에 사는 잉어나 백조어 등의 원주민을 응원하는 것이다.

꽃은 지상과 수중의 세계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기쁘게 한다.

호수는 이따금씩 파문을 일으키며 나무에게 화답하곤 한다.

벚나무 아래를 지날 때마다 레드카펫 같은 꽃잎을 밟는다.

발걸음을 조심 스러이 내딛으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 시간만큼은 나는 주연이 된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머리 위에선 벚꽃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난 유명 배우처럼 손을 들어 흔들어본다.

꽃길에선 너나없이 자신감이 뿜뿜하다.


어제 내린 비에 꽃잎이 내려앉았다.

꽃이 핀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낙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불현듯 비 내리던 지난밤, 의 안간힘을 생각한다.

봄비 답지 않게 사납던 비바람에도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이 앙다물고 버텼을 꽃을 생각한다.

'아직은 나의 시간이야.'

'싱그러운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따사로운 바람의 숨결도 느끼고 싶어.'

하며 끝까지 붙잡고 있었으리라.

호수에서 불어오는 훈풍에 몸을 맡긴 벚꽃이 나무 위에서 은하수처럼 반짝거린다.

 

꽃은 나무의 웃음이다.

한겨울 내내 참고 참았던 웃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나른한 봄볕과 살랑거리는 바람이 얼마나 자주 나무의 겨드랑이를 간질였던가.

젖니가 올라오는 유아처럼 터지려는 잎과 꽃으로 인해 나무는 얼마나 많이 입술을 깨물었을까.

웃음소리가 우수수 쏟아지는 나무 밑 꽃그늘에 서 본다.

덩달아 마음이 소란스럽다.

웃음이 절로 터지고 입이 벌어진다.

뱃속 깊은 곳에서 한숨처럼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바닥에 떨어져서도 반짝이는 나무의 웃음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보이는 나무의 언어들,

멈춰 서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나무의 생각들,

생전 처음 웃어보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웃는다.

꽃만큼 동그랗게 웃는다.


꽃의 웃음을 붙잡으려 우리는 사진을 수없이 찍었다.


굶주렸던 눈이 폭식을 하고 나니 이젠 뱃속이 텅 비어 허전하다.

진주시내에서 비빔밀면을 먹었다.

공복을 잊을 정도로 적당한 포만감이 만족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도 진양호를 따라 버스를 몰았다.

힐끗 뒤돌아보니 버스 안에는 울긋불긋 핀 벚꽃들이 의자에 앉아 웃고있다.


불 꺼진 방에 돌아와 눕는다.

천장에 걸린 벚나무의 환한 웃음이 벌떼처럼 웅웅거려 단잠이 문 밖으로 달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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