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앙 이목구심서
봄꽃의 합창
앙(仰) 이목구심서Ⅱ-35
by
강경재
Apr 2. 2024
아래로
처음 꺼내는 접시의 순수함으로 고운 목련의 자태.
거대한 환희의 축포로 하루를 압도하는 벚꽃.
야산 여기저기에 연지곤지 진분홍 진달래.
쭉쭉 뻗은 가지에 벌떼처럼 웅웅 거리는 자두
꽃.
강 건너 마을에서 성큼 건너오는 개나리의 샛노란 노랫소리.
손가락만큼 줄기를 늘어뜨린 연보라 자글자글한 꽃마리.
향기는 버리고 빈 밭을 점령해 버린 냉이꽃.
바닥에 쏟아져 깨진 유리파편 같은 별꽃.
이른 봄부터 나팔을 불며 대지를 깨우던 광대나물.
도라지꽃이 좋아 바닥에 촘촘히 수놓은 보랏빛 봄까치꽃.
이 봄엔 아무 데나 눈을 두어도 꽃입니다.
꽃은 눈동자를 채우고 시신경을 통해 뇌로 갑니다.
내 몸의 세포들은 온통 눈이 부셔 어지럽습니다.
꽃 멀미가 납니다.
이맘때면 겪게 되는 감각의 감기입니다.
봄길에 나서면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비록 우렁찬 성악가의 발성은 아니라도 도처에서 꽃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합창은 각 파트가 제 목소리를 낼 때 가장 아름다운 화음을 만듭니다.
그 합창이 하나의 울림이 되어 청중을 감동케 합니다.
목련이나 벚꽃은 화려하고 장엄하여 목소리가 큽니다.
이들은 소프라노나 테너의 음역이어서 노래는 멀리 나아가고 드넓은 창공으로 날아오릅니다.
바닥의 작은 풀꽃들은 알토나 베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노래의 배경이 되어 울림을 주는 파트입니다.
저음의 선율은 대지를 흔들고 심장을 저리게 합니다.
봄꽃의 합창이 시작되었습니다.
발밑에 흐르는 저음의 선율과
창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하이톤의 선율과
눈높이에서 밀려오는 윤슬 같은 선율이
산과 들, 동네 골목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로가 주고받는 돌림노래이고 릴레이 연주입니다.
땅에선 소규모의 중창단이 연주를 하고 있지요.
바닥에 사는 작은 생명들을 위해
하늘보다 바닥이 세상 전부인 약한 이들을 위해
고개 숙이는 지친 이들을 위로하려 노래합니다.
날이 이울자 꽃은 전등을 켜 놓습니다.
나무 주위가 밝게 빛납니다.
그중에서도 목련은 유난히 환합니다.
새하얀 솜뭉치가 무리 지어 공중에 떠있는 듯합니다.
시나브로 무대의 장막이 내려옵니다.
꽃의 노래는 사위어가고 나무는 어둠에 몸을 기댑니다.
낮동안 창공에 울려퍼진 꽃의 합창은 들끓는 그대의 마음과 호흡에 침투하여 북진중입니다.
keyword
합창
봄꽃
위로
54
댓글
4
댓글
4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강경재
소속
산청성심원
직업
시인
시와 에세이를 씁니다. 한센인의 보금자리, 산청 성심원에 살면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입니다.
구독자
336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꽃이 지네요
진양호 벚꽃길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