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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26. 2024

꽃이 지네요

앙(仰) 이목구심서Ⅱ-34

바람 없이 평화로운 오후입니다.

살구나무 우듬지가 미동조차 없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며칠 전부터 낙화를 바라봅니다.

떨어진 꽃잎이 바닥에 점점이 수를 놓고 있습니다.

이번엔 가지 없는 땅이 꽃을 피운 것처럼 보입니다.


호기심에 휴대폰의 타이머를 켭니다.

일 분에 무려 마흔한 장의 꽃잎이 떨어집니다.

여기저기에서 앙글앙글거리던 꽃이 하나씩 또는 두세 장이 동시에 눈처럼 내리기도 합니다.

공중에서 불꽃이 하나둘 꺼지고 있지요.

수직으로, 사선으로 춤을 추듯 굴러 떨어져 내립니다.

날개를 다쳐 추락하는 작은 새와 같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날개짓 하다 떨어지는 흰나비 같습니다.


꽃잎들은 우리의 시선으로 덮였습니다.

셀렘과 경외의 눈동자를 꽃은 기억합니다.

꽃잎엔 지난 며칠 간의 호의가 겹겹이 묻어있습니다.

그래서 꽃잎이 지는 건 설렘과 따뜻함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낙화는 아쉽고 안타까움을 니다.


사방으로 뻗은 나무초리에서 붙잡고 있던 끈을 놔주고 있습니다.

나무는 알고 있겠지요.

꽃잎이 스스로 손을 놓는 건지,

가지가 붙들려 있던 몸을 뿌리치는 건지,

아니면 뿌리에서 전보를 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구(중력)가 잡아당기는 건지,

바닥에 누운 꽃잎에게 묻고 싶습니다.


꽃이 이운 자리는 상처가 되어 허전함이 통증으로 밀려듭니다.

이 통증이 알알이 모여들어 곧 열매가 될 것입니다.

빛나던 황홀의 자리엔 아직은 허공만이 남아 떨고 있습니다.

낙하하는 꽃의 잔상이 대지에 포물선을 그려댑니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파우스트 중에서)


나무는 어쩌면 꽃을 입은 채 계속 살아가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이 축제가 영원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꿀벌과 직박구리가 날아와 춤추고 노래합니다.

사람의 따뜻한 시선을 한 몸에 받습니다.

사랑받고 기쁨 주는 존재로 언제나 서있고 싶습니다.


낙화로 가난하고 초라해지는 나무입니다.

비어 가는 살구나무 때문에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잔치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시장기가 돌아 헛헛한지 가끔 몸을 흔듭니다.

그러나

꽃의 낙하는 폭력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패배도 아닙니다.

오히려 대지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높이 걸어둘 승리입니다.

두고 보세요.

창공에 펼쳐질 황금빛 축제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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