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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23. 2024

고해성사

앙(仰) 이목구심서Ⅱ-33


바람이 잃어버린 젖먹이를 찾는 짐승처럼 표효하는 밤이다.

꽃 만발한 살구나무를 사납게 훑고서 신음한다.

어둠에 휩싸인 세상을 뒤엎으려는 바람의 폭거에 아내는 무섭다며 에 있으라 한다.


오늘은 해방의 날이다.

작은 독립일이다.

나를 옥죄던 멍에를 과감히 벗어버린 날이다.

마음을 짓누르던 때를 씻어버린 날이다.


진주시내 한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았다.


눈을 감고 뒤돌아보는 반조명의 성전 안.

마음 안에서 분열이 일기시작한다.

어떤 죄는 입 밖에 내놓고 싶지 않다.

그냥 사알짝 빼놓고 두리뭉실하게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치켜든다.

그렇게 한다면ᆢ 

고백 후에도 개운치 않으리라.

찜찜함이 남아 두고두고 날이 흐릿해질 것이다.

요래조래 밀당을 하느라 마음이 혼란스럽다.


하느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

다 눈으로 보고 헤아려두셨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속속들이, 나 자신보다 더 나를 잘 알고 계신다.

이미 모두를 아는 분 앞에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이미 나를 아시는 데 다시 모든 걸 고백한다고 해서 나를 더 미워하거나 나쁜 놈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본래의 나란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그대로일 뿐이다.

오히려 일부러 죄를 감춘다면 더 큰 혹을 덧붙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부끄러움 때문에 더 큰 짐을 어깨에 얹여놓는 꼴이 된다.


하느님 앞에 나는 완전한 나신이다.

그러니 솔직해지자.

숨김없이 부끄러워말고 고백하자.

나의 고백에 그분은 놀라시지 않는다.

설사 살인죄를 지었다 해도 하느님 눈에는 여전히 변함없이 그대로의 나이다.


용기를 내 모든 걸 고백했다.


사제이지만 인간이기에 날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웠지만,

토해내는 말에서 묻어난 죄의 더러움이 김치국물처럼 튈까 봐 미안하고 안쓰럽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고백을 감행했다.

하느님 앞에서 솔직해졌다.

뭐 두려울 것 있나.

이미 다 알고 계신데.

오래 묵은 숙변을 미련 없이 배설했다.


사제가 선포한다.

"그대의 죄를 사합니다!"


순간 나의 영혼은 둥둥 떠오른다.

목을 조이던 올무가 스르르 녹아내린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가벼워진다.

기분이 좋아 알 수 없는 희열이 솟구친다.

얼굴에 미소가 퍼져 나온다.

온몸이 상기되고 화끈거린다.

고해소를 나오는 데 세상이 축포처럼 환하다.


나는 하느님과 나 자신에게 더 이상 감출 게 없다.

자유롭고 떳떳하다.

이 순간 당당하고 깨끗하다.

'오늘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흠 많은 몸이 다시 정화되었다.

이제부터 발걸음을 조심조심 내딛으리라.

자주 하늘을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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