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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20. 2024

회양목, 꽃의 재발견

앙(仰) 이목구심서Ⅱ-32


매화 필 무렵 꽃이 보였다.

지나는 길에 눈에 띄었으나 특별히 주목하지는 않았다.

모든 시신경이 화려한 매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언 땅이 조금씩 풀려 가느 다른 꽃이라곤 볼 수 없는 때였으니까.


어느 날 퇴근길에 다시 꽃을 보았다.

늘푸른나무라 앙증맞은 연둣빛 꽃은 잎사귀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와이셔츠 단추만 한 타원의 이파리보다 꽃봉오리는 작았다.

마치 시골 마을의 축제처럼 보인다.

'너도 꽃을? 일찍도 피우는구나'

하고는 지나쳤다.

그 후로 매일같이 회양목 옆을 지나다녔으나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다른 초목들을 보거나 딴생각을 붙잡고 있었나 보다.

주저앉은 나무의 키만큼 내겐 존재자체가 미미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을 휠체어에 모시고 산책하는 길이었다.

길섶에 바짝 붙어 휠체어를 미는데 갑작스레 달콤한 향기가 훅, 들어온다.

꽤나 유혹적이다.

농도 깊은 꿀향기다.

이처럼 기분 좋은 내음은 흔하지 않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코를 벌름벌름거리며 향기의 시원을 찾는다.

작은 꽃봉오리엔 털실모양의 꽃잎들이 위를 향하여 수북이 돋아났다.

이 작은 꽃이 우루루 모여 달큰한 향기를 허공에 내뿜고 있다.

꽃은 작아도 나무에겐 최선이다.

오랜 시간 준비한 끝에 내놓은 걸작품이다.

거기다 향기는 진하게 달인 처럼 어느 꽃 못지않게 달달하다.


꽃에는 쇠파리와 응애, 꿀벌이 앉아 분주히 머리를 움직이고 있다.

꿀벌의 가녀린 다리에는 샛노란 꿀주머니 하나 매달렸다.

몸집에 비해 작지 않은 무게일진대 벌의 날갯짓은 경쾌하다.


봄볕이 연두색 이파리와 꽃의 수줍은 미소 위로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게 감싸주고 있다.

꽃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여린 잎은 햇볕을 한껏 빨아들여 포만감에 도톰해지고 진록의 색으로 여물어 가고 있다.


오늘은 회양목 꽃이 무딘 내 시선에 사로잡혀 그 울타리 안에서 노닐고 있다.

가난한 인식의 좁은 영토 안에서 거닐기엔 답답할 것 같아 미안해진다.

하지만 이제부터 너를 봄꽃으로 기억하리라.

봄을 여는 꽃으로 부르리라.

꽃은 소박하나 향기만큼은 으뜸이라고 말하리라.

출퇴근 길의 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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