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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17. 2024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앙(仰) 이목구심서Ⅱ-31


경호강 계곡을 따라 바람이 거셉니다.

이는 분명 봄바람입니다.

그다지 춥지 않다는 게, 밭에서 봄작물에 물을 주시는 한센 어르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파랗던 몸이 미세먼지로 부옇습니다.


마당가에 살구나무 하나 있습니다.

어제는 한두 개의 꽃송이가 보였더랬습니다.

그런데,

마법처럼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꽃이 수북합니다.

쇠꼬챙이 같이 건조하고 날카롭게 보이던 검은 가지 위에 선물처럼 보석들이 내려앉았습니다.

새하얀 솜조각에 연분홍 물감을 머금어 꽃은 은은하고도 밝습니다.

여리여리합니다.

이런 색을 빚어낸 살구나무는 너무나도 섬세하고 감성적인 화가입니다.

흰 매화나 진분홍의 복숭아꽃 보다도 더 눈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멀리서도 등불을 놓은 듯 나무는 눈에 들어옵니다.


박새 한 마리가 꽃가지 위에 날아들었습니다.

부지런히 고개를 돌리며 몇 마디 감탄사를 뱉어내고는 날아갑니다.

 "제제- 제제-"


이따금씩 다가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립니다.

꽃이 바람에 흔들거립니다.

천하에 이 처럼 예쁜 꽃이 흔들리다니 새삼 새롭습니다.

꽃의 삶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직 다정하고 좋은 일들만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분홍의 꽃잎이 곡선을 그리며 춤을 춥니다.

그 춤사위에 허공은 더욱 환해지고 황홀해집니다.

살구나무가 무대에 올라 추는 몸동작은 결코 가볍지 않고 우아하기까지 합니다.

때로 흥에 겨워 격렬하여도 꽃잎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흐트러짐 없습니다.

언제나 제자리에 돌아올 줄 압니다.

이는 전문가의 유연하면서도 절제 있는 몸짓입니다.

나무가 십여 년을 준비하고 연주해 왔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사각의 창문을 통해 살구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겨우내 흑백 tv 같던 화면을 보다가 꽃단장을 한 나무의  율동에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아,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봄이 드디어 방안에 들어왔습니다.

살구꽃이 처진 내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게 혹 보이시나요?

활짝 웃는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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