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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14. 2024

어르신은 미팅 중

앙(仰) 이목구심서Ⅱ-30


어제 어르신 한 분이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셨다.

등의 암덩이가 엎어놓은 바가지만큼이나 커졌고 이제는 어깨를 넘어 앞쪽 가슴께로 번지고 있다.

연신 '아야, 아야'를 외치는 침대에서 고약한 냄새가 엄습한다.

암덩어에서 나는 냄새다.

포타딘과 거즈에 덮여 곪아가는 상처에서 나와 흐른다.

KF-94 마스크를 뚫고 침입하는 불청객에 온몸이 순간 멈칫한다.

마른하늘에 소나기처럼 피할 수 없다.

다행히 후각은 지극히 사교적이어서 빨리 적응한다.

견딜만하더니 괜찮아진다.

어르신은 퉁퉁 부어있다.

지속적으로 투여되는 수액을 몸이 거부하고 있다.


입으로 빠져나오는 고통의 신음은 세포들의 함성이다.

어쩌면 그들이 부르는 애가(哀歌) 일지도 모른다.

돌아누울 때마다 어르신의 얼굴이 종이처럼 구겨진다.

눌린 고통이 줄곧 흘러내린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이런 괴로움의 연속이 삶인가.


나는 아픔의 깊이를 짐작하지 못한다.

슬픔의 농도를 알지 못한다.

저만큼의 진통이라면 차라리 죽음은 달콤한 유혹이다.

얼마나 간절할까.

죽음의 도래를 열망하리라.

사막을 헤매던 목마른 이에게 시원한 샘물이리라.

벽을 단번에 허무는 통쾌함이리라.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나는 미약한 존재다.

그저 나의 온기로 거친 손등을 살며시 덮어줄 뿐이다.

어르신의 모습을 더 많이 눈에 담아보려 집중한다.

이제 돌아서면 어쩌면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부디 덜 아프시기를,

목전에 온 임종을 평화로이 맞이하시기를,

저 세상에서는 즐거우시기를,

단말마에도 희망을 놓지 않기를 기도하며 성호를 긋는다.


모두가 퇴근을 한 일터에 복귀하였다.

마스크에서 여전히 포타딘과 상처 냄새가 난다.

벗어버려도 코 깊숙한 곳에서부터 배어 나온다.

내 영혼에 각인되어 한동안 따라다닐 것 같다.


어르신은 홀로 공포의 얼굴을 가진 죽음과 사귀는 중이다.

지금은 우정으로 건너가는 도약의 시간이다.

어떤 떠남은 기쁨일 수도, 해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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