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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06. 2024

치명자산에 가다

앙(仰) 이목구심서Ⅱ-29


복학하는 아들을 전주 자취방에 내려주고 돌아오다 치명자산에 가고 싶어졌다.

한옥마을이 있는 전동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한때 자주 찾았던 으로 가톨릭의 성지다.

아중리를 거쳐 군경묘지를 지나 동고산성 쪽으로 간다.

산으로 난 오름길은 차 한 대만이 지날 수 있다.

이끼 낀 시멘트 도로가 추억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도록 손짓한다.

순교자 묘지, 동고사 푯말이 나아갈 길을 가리킨다.

바람이 많이 분다.

미세먼지가 있어 날이 흐릿하다.


산 초입부터 계단이 연이어 있다.

계단은 산허리를 따라 천국에 대한 갈망처럼 하늘로 뻗어간다.

얼마 만에 밟아보는 이 땅이더냐.

10여 년 전의 내 발자국들이 일어나 신발에 우루루 달라붙는다.

발걸음은 점점 느려간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러나 맞아도 좋을 만큼인 세우다.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라는 뜻이었을까.


사선으로 빚어 놓은 바위와 진달래 꽃망울이 아기의 젖니처럼 솟아 나와 있어 반갑다.

계단 끝에 올라서니 조그만 전망대가 있다.

갑작스럽게 확 터진 시야에 전주 시내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선명한 도시의 색은 멀어질수록 뿌옇게 흐려진다.

그러다가 시선의 끝에서 모두가 하나의 색으로 변한다.

검은 띠가 지평선을 이룬다.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다 보면 남고산, 전동성당과 한옥마을, 전주시청, 덕진공원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곧바로 동정부부의 묘로 걸음을 옮긴다.

정갈하게 조성된 부부의 묘가 있다.

묘의 봉분은 원에 가깝다.

완전한 믿음은 원형으로 표현되는가 싶다.

묘 주위를 빙 돌아가며 영생을 생각한다.

부부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주위에는 매화가 우울한 산을 밝히고 있고 뒤편으로 동백꽃 몇 송이가 점점이 붉다.

커다란 바위들이 산에 들어앉아 산이 되었다.

하늘에 치오르려는 산을 바위들이 붙잡고 있는 듯하다.

이곳엔 대나무가 많다.

얼마간의 오죽도 보인다.

묘 바로 아래 산 중턱에는 성당이 있다.

바위산에, 그것도 산 중턱에 이런 건물을 지었다니 그 수많은 노고에 늘 감탄한다.

어느새 비가 멈추고 산정에 햇볕이 스며든다.

주위가 환하다.


돌아서서 다시 전주를 내려다본다.

빌딩과 자동차와 전주천을 본다.

무구한 역사가 곳곳에 배인 땅이다.

도시가 내는 소리들이 거대한 짐승의 호흡처럼 무겁고 길게 산으로 올라온다.


'띵동'

"아빠, 안경이 부러졌어"

아들이 보낸 문자다.

서둘러 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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