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힘

시간(詩間) 있으세요?

by 강경재


배낭에 한가득 일상을 구겨 넣은 채
우린 의령 한우산으로 들어갔다

미리 와 산허리를 밟고 있던 안개는
파도처럼 무릎에 출렁이고 우린 둘씩
안개의 무성한 가지를 헤치며 나아갔다

한동안 고지를 점령당해
그 빛나는 산정 보이지 않고
젖어 묵직한 발걸음과 술래놀이 하는 산

홀연히 안개 사라지고
시선을 삼켜버린 초록의 바다
길 따라 좌우로 달려드는 초록
앞서간 이들 파도에 휩싸여 보이지 않고
우리도 어른어른 초록이 되어갔다

먼지 묻은 발걸음마다 초록을 밟으며

거친 호흡으로 한없이 초록을 마셨고
탁한 눈동자 초록으로 마구 씻었다
우리 입 어느새 초록물든 말들이 새어 나왔다

누구도 모르게 눈 깜빡할 사이
가슴속 희뿌연 안개 일시에 걷어낸,
고해소를 나서는 아이처럼
새벽 목욕탕을 나서는 아재처럼


우린 푸른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

초록과 잘 어울리는

초록이 배경이 되어주는 그대, 사랑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