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따 할머니의 밤

성심원에 삽니다

by 강경재

새벽 두 시 공삼 분.

나는 지금 죽음의 사신과 함께 있다.

열린 미닫이문 사이로 어느새 들어왔는지 세 평 정도 되는 이 방에 함께 있다는 걸 알았다.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아 언제나 두려운 존재.

차라리 눈에 보인다면 이렇게 떨지는 않을 텐데.


아흔넷의 한센 할머니.

말따 할머니의 두 발은 밭에서 뽑아낸 무우처럼 하얗고 서늘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음습한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서 뛰쳐나가 멀리 숨고 싶었던 것일까.

몸이 감전된 듯 경련을 하고 숨소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뛴다.

부랴부랴 간호사수녀님을 부르고 노사제를 깨운다.


조금 전 유신부님께 병자성사를 받았다.

거칠었던 호흡이 좀 잦아들었다.

산소발생기를 통해 산소를 온몸으로 불어넣어 주고 있다.

신을 찾지 않을 것 같던 유튜브에선 묵주의 기도가 흘러나와 방 안을 채운다.

기도소리는 할머니 곁에서 군인처럼 든든하게 서 있을 것이다.


죽음이 잠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산소 포화도가 99까지 올라간다.


"그래요, 힘내세요. 할머니!"

"혹여나 죽음이 바짝 다가와 속삭이더라도 온 힘을 다해 물리치세요. 썩 꺼지라고,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매섭게 쫓아버리세요."


묵주를 손에 쥐어 드렸더니 내내 놓지 않는다.

이 간절함으로 끊어질듯한 삶도 꼭 붙잡고 계시기를.


죽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마도 저 발치에 서서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방심하는 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에 급습할지도 모른다.

죽음은 눈물도 염치도 없는 존재이기에 그럴 수 있다.

죽음에게 이런 일은 보통의 일상에 불과하다.


죽음의 시야엔 할머니와 그 곁에 앉아있는 초라한 내가 들어있을 것이다.

이런 나를 보면서 비웃고 있을 수도 있다.

'얼마 있다가 너를 보러 올 테다'라고 말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 맞다.

지금은 할머니가, 어느 날엔가는 내가 그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아침이 밝아오듯 틀림없는, 예외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죽음아, 비웃지 마시라.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리니.

너의 칙칙한 그림자와 서걱거리는 발소리를.


죽음아, 나는 결코 널 넘어뜨리거나 극복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단지 네가 적이 아니라 이웃처럼 다가오기를 원한다.

사실 내 삶은 매일 너에게 다가가는 여정이 아니던가.


문득 찾아오는 너를 기쁜 맘은 아니더라도 여름날 깊은 우물물처럼 담담하고 시원하게 맞이하리라.

평소에 자주 너를 호출하여 네게 길들여지리라.

순한 어린양이 되어 내 육신과 영혼을 네게 맞기리라.

나를 온전히 네게 내어 주리라.


그러나 죽음아,

나의 죽음으로 너는 다시는 나를 죽이지 못하리라.

나는 죽음으로써 죽음을 살게 되리라.

더 이상 날 헤칠 수 없다.

더 이상 빼앗아 갈 것 없다.

나는 네가 볼 수 없는 몸으로 남으리라.

너에게서 완벽한 해방을 누리리라.


그러니 죽음아, 최후의 승자는 누구냐.

나는 웃으며 너를 바라보리라.

영원히, 너의 임종을 지켜보리라.


할머니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린다.

숨소리도 야트막하니 가볍다.

평화롭게 잠에 빠지셨다.


죽음이 고개를 저으며 제 집에 돌아갔나 보다.

서늘하고 어둡던 실내가 밝아졌다.

여전히 묵주기도는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날이 밝아온다.


이틀 후인 성탄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던 엄마 곁으로 가셨다. 그 어떤 동요나 외침도 없이 주무시듯 조용히 떠나셨다.

그새 죽음과 친해지셨나 보다.

심장은 뛰지 않지만 아직 이마가 따뜻했다.


"할머니, 안녕히, 잘 가세요"


아직 닫히지 않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땅에 살던 별 하나 떨어져 하늘로 올라갔다.

오늘 밤엔 하늘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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