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의 AI에게는 맥락(Context)이 없습니다

AI를 잘 쓰는 방법은 시대마다 이름이 바뀐다 지금은 ‘토큰’

by moment


올해 들어 디자이너 커뮤니티에서 디자인 토큰 이야기가 부쩍 늘었다.


"토큰은 대기업이나 쓰는 것", "우리 팀은 스타일로도 충분해" 하던 분위기가 언제부턴가 바뀌었다. AI 툴을 실무에 써보기 시작한 시점이랑 딱 맞아떨어진다.



AI가 그려준 예쁜 시안, 왜 실무에서는 못 쓸까


"모던하고 깔끔한 SaaS 대시보드 화면 하나 그려줘."


요즘 핫한 AI UI 툴에 프롬프트를 넣으면 10초 만에 그럴싸한 시안이 나온다. 드리블에 올려도 손색없는 퀄리티다.


근데 이걸 받아든 실무 디자이너 표정은 썩 밝지 않다. 서비스 브랜드 컬러 대신 정체불명의 파란색이 칠해져 있고, 팀이 합의한 그리드 대신 제멋대로인 여백이 들어가 있다. 폰트도 서비스 전용 서체가 아니다.


결국 이 화려한 시안은 참고 이미지 정도로밖에 못 쓴다. 실무에 적용하려면 어차피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예쁜 쓰레기다.



프롬프트를 잘 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AI는 전 세계 디자인 데이터를 학습해서 그럴싸한 결과물을 뱉는 데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 서비스의 브랜드 컬러가 뭔지, 이 팀이 쓰는 간격 규칙이 뭔지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 AI는 자기가 학습한 "평균적으로 좋아 보이는 디자인"을 내놓는다. 어딘가 본 것 같지만 내 서비스가 아닌 시안. 이게 디자인 영역에서의 환각(Hallucination)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걸 해결하는 방법이 더 정교한 프롬프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프롬프트를 다듬어도 AI는 참조할 기준이 없으면 계속 자기 마음대로 만든다. 필요한 건 AI가 따라야 할 기준 자체를 심어주는 것이다.


예전의 디자인 시스템이 주니어 디자이너를 위한 가이드 문서였다면, 지금은 AI를 통제하는 기준으로 역할이 한 단계 올라갔다. 그리고 그 기준의 핵심이 토큰이다.



토큰이 하는 일


#0062FF 대신 color/brand/primary
16px 대신 spacing/md


숫자 대신 역할을 담은 이름을 붙이는 것. 여기까지는 많은 디자이너가 이미 하고 있다. 개발자 핸드오프할 때 이름표처럼 쓰는 거다.


근데 토큰의 진짜 힘은 이름 붙이기가 아니라, 그 이름 하나로 여러 맥락이 자동으로 처리된다는 데 있다.


IBM의 Carbon 디자인 시스템이 이걸 잘 보여준다. 페이지 배경에 $ui-background라는 토큰을 쓰면, 라이트 테마에서는 흰색, 다크 테마에서는 짙은 검정으로 알아서 바뀐다. 디자이너는 "이건 배경이야"라는 역할만 지정하면 되고, 상황에 맞는 값은 시스템이 꺼내 쓴다. #FFFFFF 라고 직접 넣어뒀으면 다크 테마에서도 그냥 흰색이다. 값은 값일 뿐이니까.


이렇게 맥락이 담긴 토큰 구조가 쌓이면, AI도 이 서비스의 디자인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지 읽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토큰 없이 값만 흩어져 있으면, AI는 영원히 맥락 없는 결과물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미 체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image.png Design Systems with Figma - 서울 웨비나


이게 이론이 아니라는 걸, Figma Make를 써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라이브러리와 토큰이 정리된 파일에서 시작할 때와 빈 파일에서 시작할 때, 같은 프롬프트인데 결과물이 다르다. AI가 맥락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Figma가 2025 Schema에서 발표한 기능들도 이 전제 위에 서 있다. Check designs는 파일을 스캔해서 토큰 없이 쓰인 요소를 찾아내고 어떤 걸 써야 맞는지 제안해준다. Variables 가져오기/내보내기는 국제 표준 규격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시했다. 지금 잡아두는 토큰 구조가 앞으로 어떤 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뜻이다.


Schema 이후 Figma가 서울에서 직접 디자인 시스템 밋업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이 구조를 정리해두라"는 신호가 아닐까? 라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화면을 그리는 사람에서, 맥락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버튼 베리에이션 만들고 여백 맞추는 건 이제 AI가 1초 만에 다 하는데… 내 경쟁력이 뭐지?"


시니어와 주니어 사이에 낀 미드레벨 디자이너들이 요즘 가장 많이 느끼는 위기감이다. 개인적으로는 화면을 직접 그리는 사람에서, AI가 올바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도록 맥락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깨지지 않는 토큰 구조를 짜고, 컴포넌트가 왜 이렇게 나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이건 AI가 대신할 수 없는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개발 쪽에서는 이미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AI 에이전트가 실무에 들어오면서, 에이전트가 실패하는 원인 대부분이 모델의 성능 문제가 아니라 맥락 부족이라는 게 밝혀졌다. 프롬프트 하나를 잘 쓰는 것보다, AI가 작동하는 환경 자체를 잘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디자인도 같은 갈래에 서 있다. AI에게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 AI가 읽을 수 있는 구조를 먼저 깔아두는 것. 토큰은 그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내일 출근하면 캔버스에 흩어진 색상 값 세 개만이라도 의미 있는 이름으로 묶어보자. 거창한 AI 툴을 구독하는 것보다, 그게 AI 시대를 더 똑똑하게 준비하는 첫걸음이지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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