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일기_10
오늘도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젠 소리칠 때 꾀꼬리 같은 꽥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자의 포효 같은 꽥이 나와야 통할까 말 까다. '이렇게 매일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짜증 내면서 글은 무슨...'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쓰기 전에도 쓰는 순간에도 자주 망설였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지 않아서. 그러다 어느 순간 좋은 글만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도 몸에 좋은 것만 먹다 보면 콜라가 땡기 듯,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좀 부족한 사람의 모습도 필요한 거 아닌가. 실수도 하고 못난 짓도 하고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그렇게 모순이 생겼다가 또 깨닫기도 하는 게 사람 사는 거 아닌가, 하고. '애써 꾸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적어가 보자.'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렇게 쓰고 보니 8할이 지지고 볶는 일상이지만 간혹 아름다운 2할의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8할의 별로인 내 모습에도 2할의 괜찮은 구석을 알아간다. 그 2할의 보석 같은 그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여덟 보 제자리걸음 하더라도 두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거면 됐지 싶다.
축구에서 리그 경기를 할 때 '꾸역승'이라 불리는 승리가 있다. 팀의 안 좋은 상황이나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이겨서 승점을 따가는 승리다. 기나긴 리그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차곡차곡 승점을 쌓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강팀일수록 경기가 많기 때문에 우승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겨서 쌓아가는 꾸역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쓰기도, 우리의 인생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나가는 힘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나가는 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필요하다. 그 힘으로 한 발씩 내딛을 수 있다.
스물한 살 때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선재 수련을 다녀왔다. 그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외웠던 명심문이 있다. '일단 해 봅니다.'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하기 싫어서, 혹은 해 보지 않았던 일이라 거절했던 일들을 명심문 한 번 외치고 눈 딱 감고 그냥 하는 거다. 회피하고 싶은 많은 순간에 저 명심문을 외우며 한 달을 보냈다. 물론 속으로는 '나한테 노래는 부르게 하지 마세요.'같은 것을 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때가 오면 어떻게든 하게 됐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평소에 잘 맡지 않던 역할에 도전하며 못 한다고만 생각했던 여러 일들이 명심문과 함께 마법처럼 하게 됐다. 인도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해 보았'던 그 순간들이 힘들다 느꼈던 순간에 자주 떠올랐다. 인도에서 명심문을 외우던 순간처럼 살림과 육아도 그냥 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눈앞에 매일 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명심문 외우듯 그냥 해 본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언제나 이유가 필요했던 나에게 일단 해보고 나면 별거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별거 아닌 일들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했던 나는 늘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해야 돼'하며 그어 놓은 경계선들이 많았다. 그 경계들은 자주 나를 채찍질했다. 그 채찍질은 시작도 하기 전에 자주 좌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 경계를 허물고, 필요하다 생각했던 수많은 이유들을 뒤로하고. 10년 전 인도에서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외웠던 명심문을 다시 중얼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