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해원 Dec 06. 2023

치밀한 겁쟁이

어떤 글방_1



나이가 들 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 질수록 겁쟁이가 된다. 이게 지금 내 모습이다. 나이가 들었고 생각이 많은 겁쟁이. 오늘 미지의 글쓰기 모임에 나간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모임이다. 누가 올지, 어떤 글을 써나갈지,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앞으로 얼마나 지속 될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A4 반장 가득 적혀 있던 누군가의 편지와 계속 보고 있으면 눈이 좋아 질것 같은 푸른 나무 숲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이들이 모인다는 것 뿐이다. 겁쟁이인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너무 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는 이 모임에 참여하기를 무척이나 망설였다.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일이나 늦게 신청을 했다. 다행히 상대도 답이 늦었다. 우리는 하루 이틀 걸러 문자를 나눴다. 답이 없거나 늦는다고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임의 모임장은 나에게 느린 답변으로 자유 주제로 글을 써서 서로를 알아가자고 했다. 나는 또 걱정이 앞선다. 마을에서 하는 모임이다 보니 불편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다음 모임에 나가지 못할 것이다. 나를 알려주고 싶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작전을 하나 짰다. 두개의 글을 가져가는 것이다. 첫번째 글은 이미 누군가에게 보여준 글, 두번째 글은 아직 아무 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글. 그래서 만약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전자의 글을 읽고, 불편한 사람이 없다면 후자의 글을 읽을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후자의 글이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읽고 올 수 있을까. 이런 작전을 짜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한마디 한다. '너 참 치밀한 겁쟁이 이구나.'


나에대해 소개하는 첫번째 글인데 온통 겁쟁이라는 얘기만 써놓은 것이 마음에 걸려 오늘 아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것만 해도 나에대해 절반 정도는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요즘 5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 한 일주일 그렇게 살았더니 어제 밤은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좀 늦잠을 자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6시 반에 눈이 떠졌다. 드디어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인가. 약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자려고 해도 잠이 않아 핸드폰 좀 보다가 일어났다. 2층에 갔더니 태생이 아침형 인간인 첫째가 만화책을 보고 있다. "오늘 늦잠 자려고 했는데 저절로 눈이 떠지네." 나는 괜히 자랑하듯 얘기 한다. 큰아이는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아침 선배가 아침 후배를 귀엽게 여기는 웃음이다.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둘째가 일어났다. 아직 다 뜨지 못한 눈으로 긴머리 휘날리며.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있는 이녀석은 오해가 익숙한 남자아이다. 나는 익숙하게 내가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 둘째의 머리를 묶어 준다. 둘째도 자기 책상 앞으로 가고 조금 있다 시계를 보니 아침먹을 시간이다. 1층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준비 한다. 며칠 전 아랫집에서 선물로 받은 빵을 에어프라이기에 데운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막내가 일어났다. 나는 저절로 혀짧은 소리가 난다. "우리 막뚱이 일어나쪄요?" 막내가 나에게 앵긴다. 우리는 서로 영겨 붙다가 자연스레 각자의 위치로 간다. 설거지가 끝나고 에어프라이기에서 잘 데워진 빵이 나온다. 빵과함께 우유와 과일 등을 꺼내어 아침을 차린다. 아이들이 아침먹는 모습을 지켜보다 나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간다. 나는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지 영상을 보는지 알 수 없는 혼동 사이에서 오락가락 한다. 단어 하나 쓰다 영상 하나 보고, 문장 하나 쓰다 또 영상 하나를 본다. 훌쩍 가있는 시간을 보며 자책한다. 이 글의 절반도 쓰지 못했는데 벌써 점심 시간 이다. 다시 아랫층으로 내려간다. 정신없이 점심을 먹고 모임에 가기 30분 전인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진정 인간은 후회와 망각과 적응을 반복하는 동물인 것인가. 어쨌거나 이 글의 나머지 절반은 이 30분 동안 쓴 글이다. 이 글의 끝이 다가오니 과연 이것이 나의 소개가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곧 모임에 갈 시간이다. 10분 남았다. 오늘 오는 사람들은 누굴까, 어떤 글을 가지고 올까, 나는 어떤 글을 읽고 있을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모임에 나가는 것은 처음이다. 치밀한 겁쟁이로 살던 나에겐 큰 도전이다. 이 도전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성덕 모먼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