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일기_13
나이가드니 처음에 대한 기억이 자주 희미해 진다.
내가 김일두 아저씨를 처음 좋아했던 때는 언제 였을까. 이 기억 역시 희미해 졌지만 어렴풋 떠올려 보면 '문제없어요'를 부를 때쯤 이었던 것 같다. 단칸방에 덩그러니 기타 하나 들고 앉아 잔잔한 멜로디와는 대조적으로 강렬한 가사를 읊으며 노래 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찾아보니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오랜만에 그 영상을 보는데 그때 덩그러니 마루에 앉아 모유수유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기타를 들고 어딘지 쓸쓸하게 노래하는 일두 아저씨의 모습과 울림이를 안고 어딘지 쓸쓸하게 모유수유를 하던 내 모습이 닮아 보인다. '엄마들 보다 아름다운 당신'아 아니라 '엄마들 다음으로 아름다운 당신'이라고 말하던 그의 가사에 나는 이미 위로 받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후에 나온 일두 아저씨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나는 울고 웃으며 자주 위로 받았다.
그랬던 김일두 아저씨가 지난해 옆 마을에서 공연 했다. 저녁시간, 특히 아이들의 취침시간에 겹치는 일정은 최대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우리집의 암묵적 규칙인데 그것을 과감히 깨고 다섯 식구 모두가 (우리기준)한밤중에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신나게 글라스테코를 하던 아이들을 이용해 작은 선물도 하나 만들어 갔다. 이른바 '용맹정진 열쇠고리'. 처음 본 일두 아저씨의 공연은 눈물을 찔끔 흘릴 만큼 좋았고 특히 노래가 시작한지도 모르고 듣고 있다 가슴에 사무쳐버린 '머무르는 별빛'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지난주에 일두 아저씨 인스타그램 피드에 그때 주었던 용맹정진 열쇠고리 사진이 올라왔다. '충남에서 만난 꼬마친구에게 받은 선물' 이라는 소개와 함께. 내가 nell 베이스 정훈오빠를 쫓아 다니던 시절, 그 오빠가 내가 선물한 모자를 쓰고 보이는 라디오에 나왔을 때 만큼이나 가슴이 뛰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이음이가 자기도 답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내 계정을 빌려 댓글을 썼다.
"김일두 아저씨 저가 준 그 고리 야광 되는거 알아요? 언젠가 또 만나요�-예산에서 만난 꼬마친구가"
그런데 그 댓글에 일두 아저씨의 답글이 다시 달렸다.
"야광 이었어? 몰랐어. / 알려주어 고마와 우리 다시 만나면 짜장면 먹자 건강하게 잘 지내."
이음이는 우리 형이 짜장면을 좋아하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하다가 하지만 자신은 볶음밥을 먹을 것이라고 야무지게 다짐도 하면서 한참을 떠들다 잠들었다.
오늘은 며칠 전에 구입한 김일두X하언진 <34:03> LP 를 꺼냈다. 나는 이 앨범에 '해당화'와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좋아 한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가도 정확히하게 와닿아버리는 이 요상한 음악을 나는 그마음 그대로 오래오래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일두 아저씨의 음악을 들을 때 마다 언젠가 다시 만나 아이들과 나란히 짜장면 먹는 모습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