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일기_12
다시 서른세 살이 됐다.(만 나이로) 작년 서른세 살은 새로운 시작이었고, 올해는 도약하고 싶은데 여전히 비틀거리고 갈팡질팡 한다. 그러다 훌쩍 3월이 왔고 내 생일도 3월인데 나는 3형제의 엄마고 인격도 3개쯤 돼서 그런지 갑자기 3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3이 두 개나 들어가는 나이를 두 해나 맞이하고 있는 나를 좀 더 특별하게 대해줘야겠다 마음먹어 본다. 방황이 일상이 되어가는 것 같은 삶 속에 매일 좌절하다 보면 이 방황에 끝이 있을까, 이 방황이 끝나면 또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겠지, 그런 생각에 인생이 참 고달프게 느껴지다가도 오히려 한발 물러서게 될 때가 있다. 한 발짝 물러서면 문제 아닌 것을 너무 오래 문제라 생각하며 붙잡고 있는 것도 보이고 비틀거리면서도 방향은 잘 맞춰 가고 있네 하며 안도한다. '느리고 휘청거려도 목적지만 잘 찾으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세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남편인데(주로 남편은 음악감상, 나는 스포츠 시청) 간혹 말동무가 필요 할 때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엔 남편이 술에 취하면 나에게 자꾸 자신이 소크라테스식 화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내면의 이야기를 캐묻는다. 나는 남편의 그 진지한 태도가 재밌기도 하고 나 역시 내 내면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성실하게 답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화법이 진짜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나를 향한 그의 진심 덕분인지(내 느낌은 둘 다 아닌 거 같긴 한데) 어쨌든 나름 도움이 된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데 대체로 결론은 '진심을 다해 살아갈 것.'
얼마 전 9시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8시 반에 일어났다. 깜짝 놀라 부리나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데 덩달아 늦게 일어난 남편이 "아침 안 먹고 가야 되는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내가 "늦어도 아침은 먹어야지."라고 답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울림이가 "아빠 나는 태어나서 아침 안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새삼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 10년 넘게 매일 빼먹지 않고 한 일이 있네.' 이 정도 꾸준함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메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여러 깨달음과 다짐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 아이들과 한바탕씩 싸운다. 며칠 전에도 울림이와 크게 싸웠는데 우여곡절(남편 혼자 고군분투) 끝에 잘 화해 해놓고 금세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싸웠다. 그 모습을 지켜 본 남편은 '울림이가 아직 아이 같은 면이 있네'하고 안심했다가 '해원이도 아직 아이 같은 면이 있네'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울림이와 싸우고 나서 한참 괴로워 하다 울림이 보다 10배는 더 극성이었던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이정도는 양호하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와 크게 싸우고 나면 마음이 무척이나 힘든데, 그래도 거기에 매몰 되어 있지 않으려 노력한다. 격해진 감정에 상처뿐인 말들은 걷어내고 아이와 나의 진심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 해 본다. 아이가 받고 싶었던 사랑과 내가 주려던 사랑의 모양이 달랐음을 찾아내고 다시 천천히 맞춰 간다. 싸울땐 다신 안 볼 것 처럼 으르렁 거려도 금방 다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에 안도한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잘 쌓아왔기 때문이라 생각하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사랑하고, 더 사랑하자고.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사랑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