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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Feb 17. 2024

나의 일기장

어떤 글방_2

© 해원



나는  일기장의 글을 좋아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생각으로  , 아무도   없는 글을  혼자 보는  좋다. 나는 내가  일기를 읽기 위해 쓰고 있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정도다.  오랜 시간 일기는 나에게 숙제였다. 진짜 숙제였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항상 시작만 하고 10장을  넘기지 못한 일기장이 수두룩하다.  일기장들은 가득한 뒷장의 공백을 남겨 놓고 묵혀지거나 버려졌다. 그때는 쓰여진 일기장 보다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  일기장은 항상 남아 있는 숙제처럼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지금은 쓰여진 일기장이 갖고 싶어 일기를 쓴다. 내가 처음으로 한 권의 일기장을 다 쓴 것은 작년 말이다. 제 작년 새해부터 쓰던 일기장이니 2년 가까이 쓰고야 다 채웠다. 나는 세상에 많은 일들이 얼떨결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이 일기를 처음 쓰게 된 것도 그랬다. 원래는 아이들 일기장만 세 개 사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만 쓰게 하면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숙제가 되어 버릴 것 같아 함께 쓰려고 내 것도 같이 산 것이다. 나는 어른이니까 두 배로 큰 것을 샀다.(나는 이럴 때만 어른 행세를 한다) 그러다 얼떨결에 내가 먼저 한 권을 다 썼다. 다음 일기장은 자축의 의미로 비싸고 좋은 노트를 샀다.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1년 정도 썼고 반쯤 썼다.


아이들의 일기장은 아직 절반을 채우지 못했다. 그래도 숙제가 되지 않게 하겠다던 나의 다짐도 반쯤은 성공한 셈이다. 아이들은 가끔 재미로 일기를 쓴다. 아이들도 나처럼 자기가 써둔 옛날 일기를 보면서 좋아한다. 나는 오타로 가득한 아이들의 일기를 좋아한다. 바르지 못한 아이들의 선을 사랑한다. 아직 글자를 쓰지 못하는 막내 ‘우리’의 일기는 '우리'의 말을 내가 받아 적어 준다. 나는 일부러 문법이나 앞 뒤 말이 맞지 않더라도 아이가 한 말을 그대로 적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어제 저녁에 반딧불이 잡으러 우리 가족 다랑 아랫집이랑 잡으러 갔는데 내일 보니까 반딧불이가 집에 또 있었다. 그리고 반딧불이는 나뭇가지 옆에 나뭇가지가 생기기 전에 풀 거기를 좋아한다. 거기에다가 우리 집을 좋아한다. ‘우리’도 반딧불이 좋다. 아주아주아주.” (23.9.10)


아이들도 나처럼 자기 일기장을 보고 또 본다. 언젠가 아이들의 일기장이 다 차면 작은 책을 만들어 주고 싶다.


우리 집에는 일기로 된 에세이집이 여러 권 있는데 지금 떠오르는 것은 최승자 시인과 김환기, 김향안, 윤형근 화백들의 책이다. 이 책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잔잔해지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하다. 평범한 듯 보이는 매일이 치열한 삶의 순간들이고 나약한 인간의 모순에 힘없이 부딪히면서도 나아가려는 우직함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책을 읽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실 모든 책들이 개인의 일기장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기장도 언젠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는 뜻을 지닌 ‘일기’가 이토록 은밀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 개인의 삶이 그만큼 특별하고 일기를 쓰며 더욱 특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기를 쓴다. 쓰면서 빛나는 내 삶을 보기 위해서.(23.12.9)



© 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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