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방_3
태어난 인간의 첫 얼굴을 보았다. 뱃속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크고 태어난 존재라 생각하면 너무나 작은. 아직은 ‘덩어리’에 가까웠던 그 작은 인간의 첫 얼굴을 기억한다. 귀여우면서도 웃기고 이상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부처의 얼굴만큼이나 평화롭고 신비로웠던 그 얼굴과 마주한 순간.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첫아이 울림이의 탄생 순간이 특히 선명하다. 환한 대낮에 태어나서 그런가. 작은 방 한 칸에서 오로지 나와 남편 둘이서 진통하던 순간들. 극한의 고통과 극한의 환희, 그리고 아름다운 고요가 공존하던 순간.
아이가 아직 얼굴을 드러내기 전, 나의 음부에서 아이의 머리가 이마까지만 볼록 나와 있는 순간에 산파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이제 아기 나왔다. 머리 한번 볼래요?” 그때 나는 정신이 없기도 하고 그걸 묻는 선생님도 너무 생소해서 “아니요!”라고 대번에 거절했지만, 지금은 그때 보지 못한 그 순간이 아쉽기만 하다. 뭐든 처음은 소중하기 마련인데. 그 처음을 놓쳐 버린 것만 같아서.
그러니까 사실은, 아이의 얼굴을 가장 처음 본 것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남편은 울림이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아기는 힘차게 몸을 뒤틀면서 쑤욱 튀어나왔다. 손은 엑스자로 가슴에 모으고 있었다. 뒤통수에서 얼굴 옆면을 거쳐 나와 얼굴이 딱 마주쳤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서둘러 아가를 엄마 가슴에 올려 주었다. 핏덩이가 이리 예뻐 보이긴 처음이다. (...) 얼떨결에 내 팔에 아이가 누워 울고 있다. 태어난 시간은 오후 1시 43분. 햇살이 밝았다. 산모 휴게실에서 창을 등지고 서서 아이를 둥실둥실 가볍게 흔들었다. 처음에는 별 소용이 없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가끔씩 웃는다. 아니, 태어난지 몇 초 안된 아기가 내 손안에서 웃다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연신 입을 옹아린다. 나도 모르게 내 입도 같은 모양으로 움직였다. 눈을 뜨려고 노력한다. 한쪽만 힐끔 떠서 보고는 다시 금방 감는다. ‘당신이 나한테 기타를 쳐 주었던 아빠가 맞나?’하고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눈 좀 맞춰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꼬박이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힘겹게 양쪽 눈을 뜨고 나를 똑바로 한번 쳐다 봐 주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가 처음 본 우리 얼굴은 어땠을까. 글을 쓰다 문득 궁금해져서 울림이에게 물었다. “울림아, 엄마 처음 봤을 때 기억나?” 울림이는 아주 잠깐의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그럴 리가.” 올해 열세 살이 된 울림이는 이제 논리가 없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나는 이 녀석이 T일거라고 확신한다) 둘째 이음이와 셋째 우리 에게도 물어봤지만 역시 ‘엄마 왜 저래?’ 하는 눈치다.(이 녀석들도 T에 근접한 녀석들이다) 당연한 줄 알면서도 왠지 서운하다. ‘나는 아직 다 기억하는데...’ 괜히 혼자 꽁해진다. 아이들은 계속 커가고 얼굴도 계속 변해 가는데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보며 처음의 얼굴을 떠올린다. 처음의 기억이 강렬해서일까, 변하고 흘러가는 이 시간들이 아쉬워서일까.(2024.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