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일기_14
겨울방학이다. 아이들이 긴 방학을 시작했고 축구도 방학 중이다. 12월 말쯤 감독님이 ‘한파와 함께 반반FC도 방학을 갖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휴식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약속한 방학 기간이 몇 주가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참여율이 저조하다. 다들 아직 겨울나기를 하고 있나 보다.
시골의 겨울은 길다. 실제로 긴 방학기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시골의 겨울은 고요한 시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는 짧아지고 더위와 함께 시끄럽게 울어대던 개구리도, 풀벌레들도 생을 마감한다. 정신없이 자라나던 잡초들도 시들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조용히 나린다. 모든 것이 잠들었거나 잠든 시간에 움직인다. 그것이 시골의 겨울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은 너무나 시끄러워서 조용해질 틈이 없다. 나에게 이번 겨울은 특히나 부산하다. 세 아이가 모두 집에 있게 되었으므로 나는 삼시 세끼를 차려주어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 책을 내는 것과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 와중에 집안 곳곳에서는 자꾸만 문제가 생긴다. 이번에는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 나고 느닷없이 쥐들이 날뛰어서 애를 먹었다. 쥐들이 밤낮으로 긁고 뛰고 아주 제집 마냥 난리 법석을 치더니 급기야 벽에 구멍을 뚫었다. 구멍 안으로 밤송이도 넣어 보고 지점토로 막아도 보고 실리콘으로 막아도 소용이 없다. 몰탈까지 만들어 발라 놨는데 영리한 녀석들이 발라 놓은 곳 바로 위를 뚫는다. 그러다 결국 내 눈앞에까지 나타났다. 쥐의 실물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동화책이나 라따뚜이에 나오는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작고 귀여운 햄스터의 느낌보다는 크고 음침한 균의 느낌이다. 처음 마주치면 곧바로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얼마 전 한밤중에 혼자 글을 쓰다 처음 쥐와 마주쳤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가 잘 수밖에 없었다.(졸고 있었던 거 아님) 어째서 힘든 일은 어김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지독한 생의 연속성 앞에 넌더리를 내다가도 그래도 해야지 하며 다시 책상 앞으로 간다. 조금씩 변해가는 것은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것을 중얼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 중얼거리기만 해도 조금은 덜 허둥대게 된다. 하나씩 견디고 해나가다 보면 늦더라도 완결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지금 내가 책상으로 쓰고 있는 곳은 1층 식탁 구석자리다. 이 식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온 식구들이 밥도 먹고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고 오만가지 것들을 다 하는 곳이다. 우리 가족의 완전한 공용 공간이자 유일한 공용 공간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 책상은 진정한 어울림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음식, 책, 색종이, 연필, 가위가 차별과 편견 없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어울려 지내기도 비좁은 이곳에 나까지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내 책상은 난방이 되지 않는 2층에 있어서다. 그래서 염치 불문 이 식탁 끄트머리에 컴퓨터를 올려 두고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50x30 정도로 전체 크기에 1/4도 안 되지만 이 책상을 사용하는 인구 대비 내가 차지하는 면적은 꽤나 넓은 셈이다. 화장실 바로 앞이라 찬바람이 들고 종종 가족들의 내밀한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도 꾸역꾸역 중얼중얼하며 책상 앞에 앉는다.
내가 주로 글을 쓰는 시간은 늦은 저녁. 아이들이 잠들고 겨우 조용해진 틈을 타 글을 쓴다. 겨울이 오기 전만 해도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다. 그때는 늦여름이었고 지금보다 해가 빨리 떴다. 새벽녘에 산에서 내려온 공기가 적당히 시원하고 상쾌해서 조용히 혼자 글쓰기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 겨울의 새벽은 추워서 도무지 일어나 지지가 않는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가도 이불 밖을 나가지 못해 다시 잠들어 버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이것 역시 정말로 계절 때문)
시골에서는 계절을 더 정확하게 감각할 수밖에 없다. 옷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집 전체가 바뀌어야 해서다. 여름에는 방충망을 수리하고 겨울에는 방한 비닐을 붙인다. 여름에는 전기를 아껴야 하고 겨울에는 기름을 아껴야 한다. 여름에는 순식간에 부패하고 겨울에는 모든 것이 얼어버린다. 바뀌지 않는 것은 그런 것들을 대응하느라 바쁜 내 몸 하나뿐인 것 같다. 그러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도 한다. 대충 사는 나도 이 정도인데, 자식들 키우고 집안일 밭일 다하고 시부모 수발까지 들면서 살던 할머니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잠잘 시간은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처연해진다. 그래서 간혹 보는 할머니들의 구부러진 등이나 다 닳은 손톱을 보면 마음이 아리면서도 세상은 할머니들에게 왜 이렇게 지독하게 굴었던 걸까 싶어서 화가 난다.
어쨌거나 새벽이 추워진 까닭에 나는 다시 밤에 글을 쓴다.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일어나는 시간도 늦어진다. 8시였던 기상시간이 9시가 되었다. 방학이라 가능한 시간이다.(사실 방학이 아니어도 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이들이 지각할 때가 많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아침형이 되었을까) 늦잠 자는 엄마가 익숙한 아이들은 엄마를 굳이 깨우지 않는다. 아이들도 매일 왁자지껄한 집에서 자기 만에 고요한 시간이 필요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일어나자마자 부산하다. 간단히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집안일을 한다. 나의 몸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때부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나와 쉴 새 없이 나를 찾는 세 명의 어린이 사이에 기싸움이 시작된다. “엄마~ 이것 봐봐!” “잠깐만, 엄마 지금 요리하고 있어.” “엄마~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잠깐만, 이불 개고 봐줄게.” “엄마~ 지우개 어디 있어?” “거기 뒤에 연필 서랍 한번 봐봐.” “엄마~ 식기세척기에 있는 거 써도 돼?” “아니, 그거 아직 하는 중이야” “엄마~ 형이 자꾸 나 놀려” “엄마~ 쟤가 먼저 그런 거야” “엄마~ 내가 봤는데 형이 먼저 그랬어!” “얘들아 엄마 좀 그만 부르면 안 되겠니?!” 아이는 셋인데 엄마는 한 명이므로 나는 항상 수적 열세에 처한다. 결국 이 기싸움에서 지는 것은 언제나 엄마인 나다. 나는 패배자가 되어 아이들의 요구에 응해 주다가 소리도 쳤다가 껴안기도 했다가 그러다 보면 또 밥 먹을 먹을 시간이다. 정신없이 밥을 하고 먹고 치우고 나면 이제는 아이들의 셔틀버스가 되어야 한다. 학원, 도서관, 카페, 마트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그러다 집에 오면 또 저녁 먹을 시간이다. 이것이 바로 삼시 세끼의 굴레다.
겨울은 여전히 길다. 방학이 아직 반도 안 지났다. 아직도 90끼 이상의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한 달 남짓 축구도 못 가고 집안일만 하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 쓰던 근육만 쓰게 된다. 안 쓰는 근육들이 찌뿌둥하다. 축구만 갔다 오면 온 근육이 아프던 내가 이제는 축구를 하지 않으면 몸이 쑤시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축구를 하게 된 것에 그런 이유도 있다. 어느 날 동생이 채소 꾸러미 농장에서 몇 달 일을 했더니 알통이 생겼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자랑을 했다. 나도 그동안 집안일을 하며 나름 잔 근육을 키워왔다는 생각에 당당히 팔을 걷었는데 완전히 말캉말캉한 물살뿐이었다.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축구를 하게 되면 어디든 알통 하나쯤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다행히 축구를 하고 다리 근육은 좀 붙은 것 같다. 힘을 주면 단단해지는 기분에 뿌듯하다. 가끔 가족들에게 힘주어 눌러 보라며 자랑도 한다. 도 대회 준비로 일주일에 세 번씩 축구를 할 때에 배에 왕(王) 자 비슷한 자국이 생기기도 했다.(물론 금방 사라졌다)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이 가면 또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 여름이 오면 다시 겨울이 그리워질 것이다. 아이들과 기싸움을 하던 시간도, 삼시세끼 하기 싫어 투덜대던 시간도, 계절을 감각하고 대응하던 시간도, 책상도 없이 글을 쓰는 이 시간도 언젠가는 그리워하게 될까. 그런 순간은 반듯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