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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Jul 01. 2024

나이 든 자의 시선으로

어떤 글방_4

© 황바람



미지의 글쓰기 모임에 다녀왔다. 치밀한 겁쟁이인 나의 걱정과는 달리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3일이나 신청을 늦게 했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이 모임을 온 사람은 총 네 명. 그중 두 명은 모임을 만든 사람들, 또 한 사람은 나, 마지막 한 사람은 모임 신청자의 친구.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먼저 와있었던 모임 지기 두 명은 나를 아주 환하게 반겨 주었다. 내가 그랬듯 그 둘에게 오직 나의 존재만이 미지수였기 때문에, 그것이 밝혀지자 그들은 밝게 웃었고 그들의 밝은 웃음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를 포함 총 네 명의 사람이 모였고, 그들은 모두 20대 미만 혹은 갓 20대가 된 푸릇푸릇한 청년들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갓 자란 식물들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운 여름의 과일들처럼 상큼하였으며 몹시 귀여웠다. 


나는 이 상황이 조금 낯설었다. 나보다 기본 10살은 어린 친구들만 있는 곳에서 모임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서른을 넘기고부터는 횟수가 적어졌지만 그전에 나는 어느 모임에 가도 막내였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곧바로 엄마가 됐기 때문이다. 애 엄마가 속할 수 있는 집단은 둘 중 하나였다. 육아와 관련된 모임 이거나, 육아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시간대의 모임이거나. 처음 가는 모임에 막내만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물었다. “애기는 아직 하나예요?”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 준비된 표정과 준비된 대사로 말 했다. “얘가 막내고 위로 두 명 더 있어요^^” 그 말에 놀라는 사람들의 표정과 표현이 좋았다. 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나는 그 특별함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내가 최연장자이다 못해 그들과 나의 나이 차보다 큰 아이 울림이와 그들의 나이 차가 더 적게 난다. 나는 귀엽고 상큼한 그들이 좋았지만 차마 좋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호들갑 떨었다가는 나이 든 나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나는 어쩐지 점점 말을 적게 하게 됐다. 우리는 첫 모임에 가져오기로 한 글을 함께 읽었고 마지막 차례로 아직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민서가 글을 읽었다. 봉숭아물을 들이며 들었던 생각과 봉숭아물이 빠지며 떠올리는 첫사랑에 대한 글이었다. 열아홉의 민서가 쓴 봉숭아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다른 두 사람도 비슷한 걸 느꼈는지 다들 민서의 글이 귀엽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귀엽다’와 내가 말하는 ‘귀엽다’의 뉘앙스가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귀여운 사람을 귀엽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구나.’ 


나는 서른을 넘겼을 때부터 처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쓰자고 다짐했다. 내 또래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친구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나이가 많다고 대뜸 반말부터 하는 사람들이 싫기도 했고, 나이를 먹을수록 생겨나는 우위가 싫었다. 왠지 주어지는 우위에는 거부감이 먼저 생겼고 그런 종류의 권위가 나와 맞지 않는 듯했다. 이런 나의 방식이 상대가 누구든 평등하게 존중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존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며 존중 이란 말로 포장한 거리 두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존댓말 사이에는 항상 적당한 거리가 생긴다. 나는 그 간격에 안심했다. 나의 모습을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적당함 속에 나는 나를 자꾸 숨기고, 잘 숨겼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삐져나오면 더럭 겁부터 났다. 언젠가부터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 이 모임에서 든든이 평어를 쓰자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내 상상과는 다르게 막상 평어를 쓰려고 하니 또 그들의 하는 말과 내가 하는 말의 뉘앙스가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삐죽삐죽 존댓말이 새어 나왔다. 그때 또다시 깨달았다. ‘존댓말이 거리 두기가 아닌 존중의 표현이 되는 나이가 되었구나.’ 나는 다시 말수가 적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꼰대인데 꼰대가 아닌 척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또 내가 특별하고 싶은 마음에 선 긋기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항상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대안학교를 다녔고,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됐고, 시골에 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엄마로서의 삶도, 여성으로서의 삶도 모두 내 선택이라며 포장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지점에 자꾸만 선을 그었다. 나는 고생하며 살아온 엄마랑도 다르고, 내 또래 젊은 여자들과도 다르게 산다고 생각했다. 그들과 달리 내 삶의 결정을 내가 하며 산다고. 그렇게 선택이라는 포장으로 나를 치장해 두면 나는 누구와도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특별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알 수 없는 허무함, 외로움, 불안함 같은 것들이 뒤따랐다. 나는 정말 우리 엄마와도 내 또래 젊은 여자들과도 다른 삶을 사는 걸까? 꼭 달라야만 하는 걸까? 물음은 자꾸 깊어지는데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답이 내 삶을 평범하게 만들 것만 같아서.


그렇게 포장하고 외면하며 10년을 살아보니 이제는 알겠다. 평범함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삶이란 수많은 이유 없음, 수많은 평범함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리고 잘 고르고 결정해야 하는 것보다 주어진 것을 잘 견디며 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비슷한 삶을 살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때문에’가 긍정적 시그널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오히려 직면하고 싶어 진다. 


나는 이 글을 쓰며 다짐했다. 이 모임을 통해 또 하나의 긍정적인 시그널을 만들어 보자고. 나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꼰대이기 때문에 나이 든 자의 시선으로 나의 이야기를 적어 갈 수 있다. 귀여운 걸 귀엽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진 자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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