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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 친구들

by 노해원
IMG_5113.HEIC © 노해원



그날은 둘째 이음이가 처음으로 지역에 작은 축구대회를 나가게 된 날이었다.


엄마 따라 축구하러 다니다 축구에 재미를 붙인 이음이가 자기도 축구를 배우고 싶다며 마을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이음이가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 날씨와, 집 짓기와, 그 외 여러 가지 일들로 축구를 나가는 날이 뜸해졌는데 그럴 때마다 이음이가 같이 가고 싶은데 왜 안 가는 거냐고 자꾸 꾸짖었기 때문이다. 마침 마을에 홍동 유소년 축구 씬을 들썩거리게 만든 레알의 축구교실 있어서 그 길로 곧장 신청을 했다. 이음이는 즐거워했고, 덕분에 나에게 왜 축구를 안 나간다고 잔소리하는 횟수도 줄어들어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알축구교실(아직 이름이 없어서 내가 방금 지었음)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유일하게 참가하는 ‘광천필락축제 풋살대회’ 참여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음이는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인이 참여해도 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나의 대회 경험을 살려 참여할 것을 적극 추천했다. 이기거나 잘하지 못해도 분명 재미있을 테니 꼭 해보라고. 이음이는 몇 번 주저하다 결국 엄마 등쌀에 못 이기는 척 신청을 했다.


모든 축구대회가 그렇듯 유소년 축구대회도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다. 집합 시간은 8시 20분, 대회 장소는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므로 우리는 7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여느 주말과는 달리 새벽부터 분주했다. 준비를 하며 홍동 어린이 축구단의 시그니처인 새빨간 유니폼과 양말을 이음이에게 건네주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반반FC와의 첫 경기에서 새빨간 옷을 입고 우리의 기를 죽였던 그 팀에 내 아들이 들어가게 되었다니. 나중에 한판 붙을 생각을 하니 괜히 비장해지기도 했다. 이음이가 옷을 입는 동안 나는 신가드와 물, 집에 있는 온갖 자잘한 간식거리들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내가 나가는 경기도 아닌데 이음이보다 내 마음이 더 분주했다.


아침 일찍부터 비가 와서 땅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경기장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먹구름이 걷히지 않아 우중 경기가 진행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에 축구반 단톡방에 ‘비가와도 진행합니다’라는 공지가 생각나 우산을 하나 챙겼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주말에 등교하는 기분이었는데, 대회장에 도착하니 마치 선수가 된 것 같고 운동장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그러나 진짜 선수는 이음이고 나는 그저 학부모로 참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내가 사실은 내향형 인간이라는 것을 밝혀 본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을 하고 어색하고 소란한 상황을 잘 못 견디며 그런 상황에서 이런저런 헛소리를 하다 집에 돌아와 어김없이 머리를 뜯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사람들은 나를 외향형 인간으로 알기 쉽다. 왜냐하면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주 들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들뜨기 시작하면 낯짝이 두꺼워지고 많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최근에도 아이가 반에서 뮤지컬 대회를 나갔는데, 학부모들이 플랜카드를 만든다고 해서 그거 좀 부끄럽다고 해놓고는 아이들이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는 아주 적막한 시간에 나 혼자 들떠서는 “너네 너무 멋있어!”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양육자로서 그 자리에 갔기 때문에 나보다 긴장했을 아이 옆을 의젓하게 지켜 주어야 한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했다.


처음에는 그 다짐이 잘 지켜졌다. 그곳에는 와 있던 양육자는 대부분 아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첫 번째 요소는 같이 들뜰 수 있는 동료와의 티키타카인데 거기 있던 아빠들과는 거의 처음 봤거나 오며 가며 인사 몇 번 나누었던 것이 다였다. 어색하게 뚝뚝 끊기는 대화의 흐름 덕분에 오히려 마음은 더욱 차분해졌다. 나는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아이들이게 자잘한 간식들을 건네어주며 그날의 첫 번째 목표였던 ‘의젓하게 있기’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했다.


대회는 9시부터 시작이었다. 선수로 참가하는 아이들은 몸을 풀기 위해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북적하던 공간에 아이들이 빠지고 나니 뛰지 않는 사람들만 남게 됐다. 벌목 후 심어둔 나무들처럼 띄엄띄엄 서있던 양육자들 사이에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홍동초에서 온 6학년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손에 팻말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검정색 하드보드지에 친구들의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 ‘진격의 OO 파이팅!’ ‘홍동FC의 매력에 폭삭 빠졌수다’ 같은 응원 문구가 알록달록하게 적혀 있었다. 학생회장 민, 이음이 친구 누나 효, 내 동생 노지의 전 직장 동료의 딸 린, 내 마음속의 아침 드라마 주인공 은 까지 모두 마을에서 보아온 얼굴이었다. 대회에 참여하는 같은 반 친구들을 응원해주기 위해 왔다고 했다. 한 친구는 그 팻말을 만들기 위해 새벽 3시까지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조용하고 의젓하게 있는 내가 아니라 활기차게 친구들을 응원하러 온 아이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뜨거운 마음과 함께 나는 들뜨는 마음을 더이상 숨겨서는 안 되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경기장 구석에서 쭈뼛대는 아이들 앞에 서서 진두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응원단 친구들! 경기는 9시에 시작이고 방금 대진표가 떴어요!”

“친구들, 아직 경기 시작하려면 좀 남았으니까 일단 천막 밑에 앉아 있도록 해요!”

“어린이들은 햄버거를 나눠준다고 하니까 어서 하나씩 챙겨요!”

“이제 곧 경기 시작한다고 하니까 어서 모입시다!”

비록 내 손에는 알록달록한 팻말은 없었지만 함께 할 동료를 찾고 나니 마음이 몹시 든든했다. 평소 춤을 잘 추고 끼가 있는 학생회장 민을 앞세워 약간의 율동을 함께 하고 평소 목청이 좋기로 소문난 이음이 친구 누나 효를 앞세워 선창을 하게 했다. 더불어 축구인의 경험을 살려 상대 선수가 실수를 했을 때 큰 소리로 비웃지 않기, 응원 타이밍 잘 맞추기, 선수한테 말 걸지 않기와 같은 것들을 알려줌으로써 응원 에티켓까지 안내했다. 구석에서 수줍어하던 아이들은 나의 지휘 아래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를 ‘단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의 열띤 응원에도 홍동초 축구부는 한 경기 만에 탈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응원 열기는 식을 줄 몰랐고 그 열기는 고스란히 옆 경기장에 뛰고 있는 홍동중 축구부를 향했다. 이제는 빨간 유니폼의 홍동초 축구부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하나의 응원군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군단의 선봉장 자리에 내가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는 언젠가부터 해가 중천에 떠서 강렬한 자외선을 내뿜고 있었다. 우리는 강렬한 자외선을 가득 흡수하며 목이 쉴 때까지 응원을 했다.(집에 오니 피부가 벗겨지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응원에 힘입어 홍동중에서 출전한 여러 팀 중 한 팀이 우승을 했다. 경기가 끝나갈 때쯤에는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다. 햄버거 하나로 버티던 아이들은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는지 이제는 축구보다 음식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엽기 떡볶이’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곁에서 은근슬쩍 나는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니 흔쾌히 다음에 같이 먹자고 제안해 주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끼워주는 거냐고 되물었고 아이들이 “당연하죠!”라며 밝게 웃어 주었다.


이후 응원단 친구들과 학교에서 만나면 열심히 친분을 과시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활동 시간이 다르다 보니 좀처럼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다들 6학년이라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거나 스스로 하교를 하니 내가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보다 일찍 학교를 떠나는 듯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이쯤이면 아이들이 나를 어색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어느 날 응원단 친구들과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났다. 친구들은 나를 보자마자 “단장님!”하고 밝게 인사했다. 아이들의 밝은 인사에 나도 반가워서 손을 힘껏 흔들었다. 어쩐 일로 이 시간에 학교에 있냐고 물었더니 “오늘 학원 안 갔어요.”하고 웃는다. 아이들의 근황과 최근 일어난 빅 이슈(6학년 장수 커플의 결별... 이 이야기는 다음 화에...)를 함께 공유하고 엽기떡볶이를 먹을 날과 우리가 다시 뭉쳐 응원하는 날을 슬며시 계획했다. 시간이 없어 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함께 손을 모아 화이팅을 했다. 그리고 다음에 학원 째는 날에는 미리 연락을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만약 우리가 응원할 행사가 생기지 않는다면 반반FC 축구 경기라도 만들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때 만약 홍동초 축구부랑 붙더라도 반반FC를 응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그날 이음이의 첫 대회 출전은 예선탈락으로 아쉽게 끝났지만, 나에게는 어디서든 함께 응원할 수 있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엽기떡볶이를 함께 먹을 친구들이 생겼다. 그것은 나에게 어느 대회 우승컵 보다 몇 배나 더 값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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