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집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청소년의 등장이다. 이제 사람들 앞에서 ‘우리 집 어린이들’이라고 말하려다 ‘아, 청소년도 있었지’하며 주춤하게 된다. 청소년의 등장으로 시작 된 가장 큰 변화는 등교시간이다. 사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정식 등교 시간은 각각 9시, 8시 30분으로 시간으로만 봤을 때는 고작 30분 앞당겨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중학교 등교 시간에 있어 그보다 큰 차이는 지각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어린이밖에 없던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지각쟁이들이었다. 정확히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아이들 담임선생님과 나눈 대화 중 ‘울림/이음이 좀 늦을 것 같아요’와 ‘죄송합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가 가장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지각은 아이들이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내가 사과를 하는 점에 있어서, 그것이 억울할 법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나 때문에 지각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저 집엔 애도 많고 아침이 참 바쁜가 보구나.’하는 시선을 받았던 것 같은데. 해가 갈수록 ‘저 집 애들은 엄청 일찍 일어난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각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일파만파 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간혹 “늦잠 자니?”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아이들은 해맑게 “네, 엄마가요.”하고 답하기 때문에...
어찌 됐건 그런 면에서 초등학교는 ‘지각’이라는 것에 허들이 낮기도 했고 아이들도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지금 생각해 보면 지각을 해도 느긋한 엄마를 보며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각을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등교시간이었다. 그러나 중학생의 등교는 학교를 가는 아이나, 아이를 보내는 부모나 처음이라 생기는 긴장감과 더불어 실제 학교생활에 주는 영향들로(청소, 나머지, 생기부 등) 인해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압박에 휩싸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변화에 겁을 먹고 남편과 내가 중학교/초등학교를 나눠서 등교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부지런 떠는 엄마와 형을 따라 어린이들까지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생기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격차가 줄었고 결국 모두 함께 일찍 일어나 지각하지 않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놀랍게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고 보니 같이 지각을 하며 연대감을 쌓았던 지각동지들과 반가움과 안심의 인사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고(다년간 비슷한 시간, 비슷한 순간에 인사하며 지내다 보면 나름 서로에게 각별한 감정 같은 게 생긴다), 여전히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알게 된 세계가 있다. 그것은 아침 일찍 등교하는 어린이들의 세계다. 등교시간이 빨라지면서 내가 이 시간에 일어나 움직이고 있다는 것 다음으로 놀란 것은 그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등교시간 30분 전에 움직이는 삶은 대단히 부지런하고 특별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사는 쪽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에 등교하는 차량이나 집에서 나와 삼삼오오 걸어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며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오히려 대단했던 것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놀라움에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각 그룹 간의 면면과 성장과정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무리로 다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근처에 사는 같은 학년 친구들이거나, 형제들이었다. 대체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혼자 등교를 시작하는 듯했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등교 방법도 다양해졌다. 가장 많은 인원으로 함께 걷던 이음이 반 친구들은 한 해 동안 걷기에서 킥보드로 진화했다가 최근에는 자전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질 무렵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매일, 빠짐없이, 단 둘이(!) 함께 걷는 6학년 H군과 Y양이었다. 그때까지 매일 떼를 지어 함께 다니는 4학년 혼성 무리들과 형제들이 아니고서야 함께 다니는 혼성 그룹을 보기는 어려웠으며 그것도 남녀가 단 둘이 다니는 것은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같은 반 친구가 그들과 같이 걷지 않고 두 사람과 멀찍이 떨어져 먼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가끔 몰래몰래 사진도 찍었다) 나는 확신했다. ‘둘이 사귀고 있구나!’
어릴 때부터 만화, 영화, 드라마 모두 로맨스만 찾아보던 나는 어느새 그 둘의 관계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그들의 기류를 알아차렸을 때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친구를 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느새 나는 혼자 그 두 친구를 홍순이(홍동 애순이)와 홍식이(홍동 관식이)로 이름 짓고 매일 아침 이 친구들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지켜보는 애청자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두 사람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크다 해도 두 사람을 쫓아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홍순이와 홍식이를 볼 수 있는 순간은 나와 두 사람이 등교할 때 겹치는 순간, 찰나의 단 한 장면뿐이었다. 하루에 단 한번 그것도 자동차 창문 밖으로 그저 둘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는 것뿐인데도 고단했던 나의 아침이 밝아졌다.
마침 이음이가 홍식이와 홍식이 친구들과 함께 방과후 클라이밍 수업을 듣고 있어서 아침마다 호들갑 떠는 엄마를 위한 생생정보통이 되어 주었다. 학교와 클라이밍장을 오가는 봉고차 안에서 형 누나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열심히 담아 오는 듯했다. 봉고차에서 내린 이음이의 얼굴은 조심스레 상기되어 어떤 기억을 꼭 붙잡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런 이음이의 표정을 보면 나도 한껏 기대가 됐다. 이음이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붙잡고 있던 기억을 펼쳐냈다. “엄마, 홍식이 형이랑 홍순이 누나랑 사귄 지 꽤 오래됐대.” “5학년 때 헤어졌다가 사귀는 거라던데?” 그리고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며 이런 소식까지 전해주었다. “엄마, 근데 그거 알아? K형이랑 D누나도 사귄대.”
다른 사람의 연애는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나는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올해는 특히 아침마다 홍식이와 홍순이의 등굣길을 보며 어린이의 사랑이야기에 푸욱 빠져 지냈다. 매일 아침 두 친구가 만들어 내는 장면들을 이어 붙이고 나면 어린 시절 그렇게 중요하다고 선 긋던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좋아해 보는 경험, 서로가 특별해지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이름 아래 반짝이게 되는 것. 그것 앞에서는 좋아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모두 같은 것이 된다. 어린이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홍식이와 홍순이가 손을 잡고 걷던 날, 불현듯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실제 사랑 보다 가상의 사랑이야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것에 몹시 둔했다. 둔 하다 못해 경기를 일으키는 타입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작은 학교를 다녀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꽤 있었는데 적극적인 그들의 표현에 비해 나의 답은 항상 무심하거나 냉담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떤 남자애가 내 가방에 몰래 청혼 편지를 보냈는데 ‘청혼’이라는 단어에 기겁을 하고 버스에 버리고 도망 나왔을 정도로...
그러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한 발짝 현실 세상으로 나와 주변 친구들 흉내라 내보자는 마음으로 같은 학년 남자애랑 약 2주간 사귀었던 적이 있다. 그 남자애와 내가 사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유일한 일은 단 둘이 등교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둘이’였기 때문에 나와 그 남자애는 친구들이 없는 등교시간 1시간 전에 정문 앞에서 만났다. 그 남자애는 학교 앞에 살아서 자전거를 타고 혼자 나오면 되었지만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약 30분 가까이 걸렸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가 태워줘야만 했다.(그때 아버지 마음이 어땠을까) 아무도 없는 학교, 고요한 정문 앞에서 교실까지 약 500미터 정도 될까 말까 한 그 언덕을 우리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손은 고사하고 나란히 걷는 것도 부끄러워 앞뒤로 걸었던 등교 데이트는 2주 만에 막을 내렸으므로 그것은 나에게 기억이라 하기에도 좀 민망한, 아주 작은 파편일 뿐이었다. 그런데 홍순이와 홍식이를 보며 그 기억이 갑자기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반갑게 만난 응원단 친구들 사이에 홍식이가 함께 있었다. 원래 우리 응원 그룹에 홍순이가 속해 있는데 그날은 보이지 않아서 어쩐 일인가 했더니 얼마 전 홍식이와 홍순이가 헤어졌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고 홍식이를 쳐다봤다. 홍식이는 그런 나를 보고 “몰랐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친구들은 홍식이를 가리키며 “얘가 자꾸 번 아웃이래요.” “그런 말 좀 하지 마, 우리 나이랑 안 어울리거든?” 같은 말을 하며 북적댔다. 바쁜 등교와 함께 내 가슴을 뜨겁게 해 주었던 홍순이와 홍식이의 사랑이야기가 이렇게 갑작스레 막을 내리다니… 사라진 아침 풍경에 나는 괜히 마음 한켠이 잠시 쓸쓸해 졌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않기로 했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빛나는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고 두 사람 역시(지금은 번아웃이 올 정도로 힘들 지언정) 언젠가 그 시간들이 반짝이며 떠오를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린이게는 쓸쓸한 이별 보다 씩씩한 이별이 더 잘 어울리니까. 나 역시 씩씩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앞날을 오래도록 응원할 것이다. (그래도 재결합 대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