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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무대에 서면 눈물이 난다

by 노해원
© 초록바람



올여름 둘째 이음이네 반은 뮤지컬 준비로 뜨거웠다. 이음이는 매일 밤 눈치 주는 형과 싸워가며 이어폰을 끼고 방에 들어갔다. 선생님이 녹음해 준 음원을 들으며 매일 노래 연습을 했고, 이음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족들도 덩달아 흥얼거리게 되었다. 학교에서 오래 함께해 온 연극 선생님과 담임선생님 지도하에 스물세 명의 아이들이 함께 가사와 음악을 정하고 배역을 나누었다. 아이들은 연습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학기 예체능 수업을 모아 뮤지컬 연습을 하고, 빽빽하게 채워진 교과 수업과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싫은 내색 없이 뮤지컬 연습에 마음을 모았다.


이음이는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서 가장 다정하고 사려 깊은 어린이면서도 ‘내가 할 거야!’ 혹은 ‘이거 아니면 안 돼!’를 자주 외치던 아이였다. 좋게 말하면 자기 기준이 명확했고 안 좋게 말하면 고집이 쌨다. 커 가면서는 적절히 타협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갔지만 여전히 해야만 하는 일에는 영 내켜하지 않아 하거나 그래도 하기 싫을 때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기 싫은 마음이 눈물로 흘러넘쳐도 해야 하는 것은 해야만 하는 마음의 소유자... 그러니까... 쉽게 말해 좀 까다로운 아이였다.


나는 그런 이음이가 자주 어려웠고, ‘뭐 해라’라는 말을 해야 할 때면 어떻게 빙빙 돌려서 부드럽게 다가갈 것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가장 주고받기 어려운 대화는 ‘숙제’에 대한 물음과 답이었다. 내가 “숙제 없니?”하고 물어보면 이음이는 “있긴 한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또 조금 있다가 “숙제했니?”라고 물으면 “해야 되는데...”하고 또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잘 시간이 다 되어서야 연필을 드는 아이에 모습에 나는 어금니를 깨물며 다그치고 이음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그랬던 이음이가 학교에서 받아오는 뮤지컬 숙제만큼은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척척 해나갔다. 심지어는 이제 그만 좀 부르라는 형의 핍박에도 맞서 싸우면서. 그런 이음이를 보며 지금 이 뮤지컬 연습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수 있었다. 그리고 종종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이 비슷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이 무대를 준비하는 모두가 진심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홍동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12월이면 연극제를 연다. 그래서 학교 일정에서 뮤지컬이나 연극 연습을 하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 연극제가 있는 몇 달 전이나, 아무리 빨라도 2학기부터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렇게 학기 초부터 준비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올해 이음이네 반은 학교 연극제뿐만 아니라 군 대회, 도 대회에도 참여를 계획이라고 했다. 올해 새로 부임한 이음이의 담임선생님이 음악과 예술에 진심인 분이어서(밴드와 뮤지컬을 하셨다고 한다. 어디서 했는지는 모른다...) 숙제처럼 억지로 만드는 무대가 아닌 아이들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며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충분히 배우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맹목적이 되지만 않는다면 대회가 되었든, 시험이 되었든 적당한 목적과 압박은 성장에 중요한 동력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소식이 한편 반가웠다. 그리고 이음이네 뮤지컬 소식을 듣기 전 카더가든 유튜브 ‘스쿨오브락’ 코너에서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의 대곡 초등학교 친구들과 자신을 ‘쿠스요(kusyo)’라고 소개하는 담당 선생님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응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는 기타와 베이스 없이 미디와 피아노, 전자 드럼만으로 락과 힙합의 경계를 뛰어넘으며(최근에는 트로트도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초등학교 밴드다. 카더가든은 이번 코너에 새소년을 초대해 대곡초등학교에 직접 찾아가 이런 소개와 감상으로부터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그 페스티벌 그 무대(영상)를 저는 너무 많이 봤어요. 칸예 웨스트 노래 틀어놓고 ‘안냐세요 저희는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입니다’ 하고 갑자기 트레비 스캇 노래를 부르는.”


이후 미대를 나왔지만 뒤늦게 피아노를 접하면서 ‘연주 영역의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기까지 왔다는 쿠스요 선생님의 소개와 함께 아이들의 연주가 시작된다. 선곡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Radiohead - paranoid android

Metallica - enter sandman

Kanye West - runaway , touch the sky

Travis Scott - FE!N

21 Savage - redrum


한 번쯤 락과 힙합을 사랑했던 어른에게는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뻐렁치는 선곡리스트를 아이들이 그 어떤 꾸밈없이 연주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묘하다 못해 신비로워서 아무런 경계 없이 흠뻑 빠져든다. 듣고 있던 카더가든과 새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들의 연주를 목격한다. 기타 하나 없이 엄청난 기타 소리를 내는 무시무시한 연주들을. “뭐야? 뭘로 치는 거야?”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영상을 보고 이 밴드가 알려지기 시작한 ‘RAPBEAT’ 페스티벌 참가영상을 찾아봤다. 온갖 힙합 아티스트들이 나왔던 무대에 단정한 옷을 입고 나타난 초등생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다 곡이 진행될수록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열광하기 시작한다. 연주가 절반쯤 진행된 이후부터는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온다.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와 연주에 사람들이 호응할 때마다 아이들의 표정은 놀람과 동시에 기쁨과 뿌듯함으로 가득 찬다.


“선생님이 바라시는 아이들 미래의 모습이 있을까요?”라는 카더가든의 마지막 질문에 쿠스요 선생님은 이렇게 답한다.

“사실 저희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지금 학생들이 이런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어떤 미래가 펼쳐져도 자신감 있게 새로운 일에 부딪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쿠스요 선생님이 말한 ‘성공’은 시험에서 1등을 하거나 유명해지는 것이 아닌 각자가 최선을 다한 모습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무대로 선보이는 것이었을 테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이음이가 경험하게 될 뮤지컬 대회 역시 좋은 성공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에 가장 중요한 요건인 아이들의 최선과 그것을 이끌어야 할 선생님의 음악을 향한 사랑의 깊이가 충분해 보였기 때문에.


이음이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개사한 음악을 본인이 직접 녹음해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무대에는 나오지 않는 각 배역의 이름들을 모두 정하고 아이들에게 되도록이면 자기 파트뿐만 아니라 전체 음악을 숙지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그래서 처음에는 이음이가 어떤 배역인지 알 수 없었다.) 방학에도 뮤지컬 캠프를 만들어 3박 4일간 맹렬히 연습을 이어나가고, 대회 하루 전날에는 전교생 앞에서 실전연습도 했다.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이음이의 무대를 보게 된 막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이 지금까지 중에 제일 재밌는 날이었어!”(해석 : 최근에 있었던 일 중 이음이 형네 뮤지컬을 본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나는 원래도 잘 우는 편이지만, 아이들이 무대에 있으면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몇 해 전 울림이가 ‘말모이’라는 연극을 하며 부모를 여의고 혼자 남은 장면을 보았을 때도, 막내 ‘우리’가 어린이 집을 다니고 처음으로 ‘질풍가도’ 응원 율동을 했을 때도 나는 펑펑 울었다. 문제는 그 장면들이 그렇게까지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나 혼자 너무 많이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음이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에도 엄청나게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 걱정이 됐다. 내가 울 타이밍이 아닐 때 울어 버릴까봐...


이번 홍동초등학교 4학년 친구들이 준비한 뮤지컬 <홍동 히어로즈>는 벼와 무당벌레, 개구리와 오리가 함께 사는 평화로운 홍동논에 잡초대장과 벌레 부대가 나타나 힘을 합쳐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도레미 송, 알라딘 ost 등 아이들에게 익숙한 음악들을 극에 맞춰 개사하여 불러서 듣는 이도 흥겹고, 춤, 소품, 무대, 조명까지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노력과 정성이 곳곳에 스며있어 보는 재미도 가득한 무대였다. 매일 밤 이음이가 부르던 노래들이 흘러나올 때마다 나도 같이 속으로 흥얼거렸다. 무엇보다 오랜 연습과 이음이 특유의 섬세함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까다롭게 느껴졌던 이음이의 섬세하고 예민했던 모습들이 무대 위에서 촘촘하게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나는 어김없이 울었지만 다행인 것은 눈물을 흘리는 타이밍이 적절했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 한껏 몰입한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개인적인 감정 보다 그 캐릭터가 느끼고 있을 감정에 이입하게 되어서였다. ‘내가 가진 끼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해 보지 못 한 역할(사람)이 되어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던 선생님의 노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진을 찍으러 무대에 모인 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했다는 경험에서 오는 뿌듯함의 표정이었다.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에너지에 나도 같이 함박 웃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카메라로 고정된 정적의 순간, 나는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너네 진짜 멋지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었다.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 ‘RAPBEAT’ 페스티벌 참가영상/출처-kusyo)

https://www.youtube.com/watch?v=BV8STrFKX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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