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생각들 11 |당신은 지쳤습니다.

쉼이 무엇인지 규정하지 못하면 버틸 수 없다.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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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관객모독』톤으로


당신은 지쳐 있습니다. 당신은 소진되었습니다. 당신은 무기력합니다. 휴가를 얻거나 하루 종일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서히 낡아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쉼을 알지 못합니다. 쉰다는 것, 쉰다는 일, 것, 과 일, 이 된 쉼에 대하여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살아있습니다. 산다는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지속하고 버티고 가끔 나아가기, 세 가지만으로도 바깥에서 보기엔 구조신호만큼 허겁지겁합니다. 당신은 쿵쿵댑니다. 삶을 감당하기에 심장의 크기는 충분한가? 혈맥의 길이는 충분한가? 왜 심장은 좀 더 크지 않고 폐는 두 개밖에 되지 않는가? 의문을 가져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당신이란 사람은 채워져 가고 마음은 쇠약해지며 피부는 늘어집니다. 숨겨두었던 영혼을 감추기가 버거워집니다. 낡은 사람들은 그래서 쉽게 영혼을 드러냅니다. 빛깔이 맑거나 탁하거나 짙거나 새빨가거나 어쨌든 영혼들은 더 이상 감춰지지 못하고 벌거벗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당신의 영혼은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소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주변에는 당신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들끓습니다. 시간과 공간과 생각과 모든 것이 당신을 벼랑으로 몰아갑니다. 당신의 밤은 오로지 완전히 고갈되어 기절했을 때에만 온전합니다. 당신의 낮은 너무 길고 지루합니다.

보장받지 못한 당신의 하루를 대변하기 위해 날카로운 감정만 솟아납니다. 당신의 여분은 오로지 화를 내고 분노와 오한과 폭발하는 종류의 것에만 사용됩니다. 모든 것을 전소하고 당신은 텅 비어 버렸습니다. 텅 비어 있는 채로 잠깐 웁니다. 많은 단계를 생략하고 오로지 제일 뜨거운 감정과 제일 차가운 감정만 남아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당신은 갑자기 달구어졌다 갑자기 힘을 잃고 얼음 속으로 추락합니다. 당신은 손상된 전구처럼 금이 간 유리 안에서 깜빡입니다.


당신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합니다.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자꾸 움직입니다. 발가락이 열 개라서 힘도 열 개 씁니다. 잠깐 일어나서 오줌을 누러 다녀오는 동안 벌써 열 개의 발가락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은 동물입니다. 식물이 되기에는 싸가지가 없습니다.

당신은 제대로 눕지 못합니다. 몸의 앞면과 뒷면이 골고루 있기 때문입니다. 아, 미안합니다. 옆 면도 두 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네 개의 면을 모두 적절히 사용하지 못합니다. 눈과 입과 코는 앞면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낭패입니다. 낭패입니다. 당신의 뒤쪽은 자꾸 둔해집니다. 당신의 옆쪽은 자꾸 굳어갑니다. 그래서 앞면은 지나치게 피곤합니다. 당신의 앞쪽은 너무 닳았습니다. 그런다고 엎드려 있기엔 숨이 막힙니다. 당신은 직립보행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앞걸음 칩니다. 당신의 앞은 너무 많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뒷걸음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당신은 지쳤습니다.


당신은 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하지만, 계속 이어 붙이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덕지덕지 풀칠한 곳마다 너절합니다. 자, 이제 쉬세요. 라고 말하면 너덜너덜한 조각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멈추지 못합니다. 계속 이어 붙이고 이어 붙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이 조각보처럼 짜임새가 있거나 모자이크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남은 기운은 파랗고 어제 남은 기운은 누렇고 내일 남은 기운은 거뭇합니다. 색을 맞출 여유도 없이 이어 붙여서 생을 연명합니다. 그 위에 겨우 누워 쪽잠자는 당신의 쉼은 쉰내가 납니다. 그것도 예술이라고 추켜세울 낭만도 없습니다. 누더기 같은 당신의 쉼이여, 애석하게도. 애석하게도.


당신은 쉬지 못할 것입니다. 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쉼을 규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행정서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도록 명문화하지 못하면 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반차 사유, 월차 사유, 휴가 신청서, 기타 등등. 당신의 쉼은 반려될 것입니다. 서류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쉼을 고르시오. 심리 테스트인가요?성격 유형 테스트인가요? 스트레스 지수 검사인가요? 검사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당신은 쉼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자, 쉬세요, 하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교 삼학년까지 교육과정에 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의 쉼과 고등학교의 쉼은 너무 다르니까, 교과서 편찬위원회를 소집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 교육자들은 교육과정을 논의하다가 지쳐버렸습니다. 그들도 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리 되었습니다.


당신은 쉬고 싶습니다. 쉬고 싶지 않습니다. 쉬는 법을 모른다는 수치를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쉬지 않을 것입니다. 쉼을 위해서 공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쉼 이 뭔지 생 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모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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