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생각들 9 | 나의 소중한 스승

by Ggockdo


나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공부가 재미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건 체질과 성격에 맞는 내용 덕분이기도 했지만 좋은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잘 따르던 교수님은 어느 시점이 되자 '교수님' 말고 '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셨다. '교수'는 대학이라는 장소에 국한된 것 같다며, 대학을 벗어나도 무어라도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늘 나를 '00씨'로 부르며 한 번도 반말을 한 적이 없었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은 학년에 상관없이 서로를 '00씨'라 부르며 섣불리 말을 놓지도,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00님'처럼 '00씨'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적인 예의였다.)

선생님은 본인의 글을 학생들의 글 사이에 끼워넣고 몰래 비평대상이 되었다. 이름이 달리지 않은 작품을 차례로 비평해가며 점차 익명의 비평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체감하고 있던 차였다. 수업 말미에 저자를 밝히다 작품 하나가 남으면 그제서야 학생들은 크게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당황했지만 선생님은 우리를 절대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익명의 비평에서 예의를 지키는 방법을 천천히 터득해 나갔다.

선생님은 미발표 원고를 제본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다. 우리는 미래의 시제로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미발표된 원고가 미래에 어찌 될지에 대해서, 현재의 글이 아닌 미래의 글에 대해서 말하길 즐겨했다.

인문학부에서 가장 인원이 적은 선생님의 수업은 지하의 가장 외진 교실을 배정받았다. 반지하 건물의 가장 깊숙한 교실은 사시사철 냉기가 흘렀고 자그마한 창문을 열먼 사람들의 발만 간신히 보였다. 모바일도 터지지 않았다. 깊숙하고 추운 곳에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불춤 추는 시를 낭독해 주었다. 한 선배는 와인을 한 병 가져왔고 다른 학생은 감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왔다.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던 구석에서 우리는 천대받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지만 선생님은 우리를 꼭 배부르게 만들었다. 우리는 글을 나누는 법을 배웠고 끼니를 나누는 방법과 미래의 언어로 낭만을 읊는 방법을 배웠다.


선생님은 가끔씩 강의실 불을 끄고 우리를 재웠다. 시험 기간이나 유난히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수업 중에 꼭 30분씩 다들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게 했다. 삼십분 뒤에 일어나면 커피냄새가 났다. 우리는 선생님이 뽑아 온 커피를 나눠마시며 수업을 계속 들었다.

나는 질문이 많았고 이상한 방식을 고수하기도 했다. 문학 과제로 미술작품을 내놓고 비디오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갑자기 레포트 대체로 3악장짜리 피아노곡을 작곡해 내기도 했다. 선생님은 괴짜같은 내 짓거리를 모두 받아 주셨다. 그리고 졸업할 때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내가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을지, 걱정하셨다고 한다.




나에게는 교실에서 만나지 않은 스승들이 있다.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온 슬라이드 필름으로 고흐와 모네, 파울 클레와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여주던 예술의 스승도 있었다. 옥탑방의 코 시린 밤, 유치원에 다니는 나를 앉혀 놓고 흰 벽에 OHP 필름에 인쇄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비추고 설명해주었다. 쾰른과 노트르담의 장엄함과 로마의 교회는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흰 벽에 어른 거리던 웅장한 교회화 조각들이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고흐와 모네가 나무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과 르네 마그리트와 자코메티의 질감도 알려주었다. 나는 고작 미취학아동이었지만 고작 대학생이던 내 스승은 나를 아이 취급하지 않았다.

스승님은 나를 영업이 끝난 동기의 피아노 학원에 데려갔다. 음대 동기 모임에 좋은 뮤지션이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전공생도 아닌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불 꺼진 피아노 학원의 로비에 앉아 처음으로 러시아 재즈음악을 들었다. 지금은 재즈가 아니면 잘 듣지 않는다.




스승들은 나를 어리게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른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스승과 제자는 어린 사람과 어른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좋은 스승들은 오로지 학문과 분야 안에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존중해 주었다.

나는 스승들로부터 존중을 제일 많이 받았다. 그것이 내 배움의 8할이었다. 배우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고 익히는 것도 전적으로 내 일이었다. 스승은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존재로 존중해 주는 방식으로 내가 기꺼이 배우는 책임을 지게 했고 그로서 오롯한 사람으로 갖춰지도록 했다.

스승들은 시간과 공간을 따지지 않았다. 나의 마음 스승, 시 스승님의 시는, 가르침은, 그 때의 것이 지금도 공부가 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수업 시간에 남긴 스승의 가르침을 지금 곱씹어 배운다.


또한 일면식도 없지만 나의 스승들은 여전히 많은 말을 한다. 에리히 레마르크, 라이너 마리아 릴케, 허수경, 오규원, 아베 고보, 바쇼, 외젠 이오네스코, 푸코, 에코, 회퍼, 바슐라르, 만델슈탐.

또 여전히 연주한다. 딕 하이만, 에스뵈온 스벤숀, 빌헬름 캄프, 키스 자렛, 빈스 과할라디, 니나 시몬, 듀크 조던, 보소, 아비샤이(s), 발데스, 빌 로렌스, 빌리 테일러, 부이카, 찬요 도밍고, 프레드 허쉬...



아직 만나지 못한 내 스승들은 또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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